한자와 나오키1권에 이어 2권에 대한 후기를 쓰려고 한다.
해당 책을 읽으면서 느낀건 아 재미있다, 그리고 내 은행생활이 생각난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남겨두고싶다 였다.
그래서 고작 1년 반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은행원으로서 겪거나 생각했던 몇 가지 사건들을 후기로서 남겨보려 한다.
첫 번째, 지워지는 볼펜.
최근 동기들 사이에서 지워지는 볼펜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실수를 대비한 볼펜, 누구에게나 이것은 잇템! 이라고
그 말에 혹한 나도 하나 구입했고,
"수정"이 가능한 덕택에 요새 쏠쏠하게 이용 중이었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지운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긴 하다만,
글자를 눈 앞에 두고 읽지 않는 한 쉽게 티가 나지는 않아 꽤나 유용하다
적어도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있다는 점이 무척 좋다
헌데, 이 볼펜을 사용한 뒤부터 괜히 이런 생각이 든다
"다른 것들도 고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뱉은 말, 내가 행한 행동, 남에 대한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부러움
나의 가치를 떨어뜨렸던 이런 것들도 수정이 가능하다면 좋을텐데
욕심이다
세상이 수정될 수 있다면, 난 아마 이 세상 최고의 거짓말 쟁이, 허풍쟁이가 되어있을 것이다
100개의 섬 중 99개의 섬을 가진 자가 1개의 섬을 가진 자보다 더 갖고 싶은 열망이 크다고 한다
가진게 늘어날수록 겸손보단 조바심이 늘어나는게 인간이다
그래서일까, 지워지는 볼펜을 사용하기가 싫어졌다
실수를 덮다보면 결국 곪아 터질 것이다
상처를 모른 척 숨겨두다간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오듯,
실수에 익숙해지고 무뎌지다보면 일을 함에 있어서 경각심이 줄어들 것이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선물하는 이 직업을 가진 내가
언젠간 누군가에게 상처를 선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다시 지워지는 볼펜을 모니터 옆 연필꽂이에서 필통 속으로 집어 넣어야겠다
두 번째, 땀 흘리기.
나의 면접 마지막 멘트는 아래와 같았다
지금 두 손에 땀이 가득 차 있습니다
아마 ㅁㅁㅁㅁ에 입행하고 싶다는 저의 열망이 밖으로 표출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이순간 흘린 땀을 잊지 않고,
향후 ㅁㅁㅁㅁ에서 일하면서 열심히 땀흘리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세 번의 땀을 흘려야 한다
첫째, 열심히 일하며 흘리는 땀
둘째, 적당한 긴장감으로 흘리는 땀
셋째, 잠에 들기 전 가로등만이 나를 반겨주는 한적한 길 위에서 뛰면서 흘리는 땀
세 번의 땀을 흘리고 나면 하루가 끝난다
그리고 이 루틴을 다섯 번 겪으면 일주일이 끝난다
그리고 이를 네 번 겪으면 한 달이 끝난다
너무나 간단하다
고작 3x5x4=60번만 땀흘리면 한 달이 지나 월급이 나온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재작년 이맘때 즈음 대만여행을 하면서 하루에 수십번씩 땀을 흘렸다
뜨거운 햇살 때문에 땀을,
제한된 예산에 맞춰 돈을 쓰기 위해 땀을,
여행자의 즐거움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상충하는 마음 때문에 땀을,
등등
이에 비하면 2년 뒤의 나는 얼마나 편하고 행복한가
이렇게 스스로 또다른 주문을 외우면서
오늘 하루도 나의 가치를 높이는 행복한 하루가 되게끔 화이팅을 외쳐본다
세 번째, 뜨거운 여름의 시작(지금은 가을이 다가오지만)
쇳가루가 자석에 이끌리 듯, 내 몸에 햇살이 달라 붙는다
이제 겨우 여름이라는 기간에 첫 발걸음을 디뎠을 뿐인데,
벌써부터 지쳐버린 듯한 기분이다
반팔, 반바지를 입고 다녀도 땀으로 흥건히 젖어버릴 것만 같은 날씨인데,
지금의 나는 긴 셔츠, 정장바지 차림으로 출근하고 있다
하루종일 무거운 옷을 입고 퇴근 후 회사 밖을 나서면,
한순간 답답함이 내게 몰려와 숨도 제대로 못 쉴만큼 후덥지근함을 느끼게 된다
아, 이 여름을 어떻게 버틸까
얼마 전까지 나는 내가 회사에 다니는 이유를 찾고자 노력했다
회사생활이 내 삶의 어떤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과연 34년 간 난 어떤 마음가짐으로 은행을 다녀야하는지 등등...
이런 고민에 사실 일 배우는 것에도 열정이 느껴지지 않았고,
마치 기계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 지금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부른 소리고, 행복한 고민임을 알고 있다만,
내겐 그런 이유, 의미, 목표가 필요했다
그런데 최근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를 깨달았다
우린 벌써부터 의미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
당장 눈 앞에 있는 일을 처리하고,
그게 하루, 일주일, 한 달이 채워지면 월급을 받는 것,
지금은 이 과정을 완수하기에도 벅찬 시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난 여름의 시작점에 서있다
앞으로 수많은 시간 동안 땀 흘리고, 지치고, 짜증나겠지만
우선 내 눈 앞의 일들을 하나씩 처리해나가는데 목표를 둔다면
언젠간 뜨거운 여름의 시간이 지나갈 것이다
그럼 곧 말이 살찌는 계절인 가을이 오겠지
물론 이후에 겨울 그리고 또 다시 여름을 수없이 겪겠지만,
그 사이에 다가올 봄과 가을을 기대하며 매일 하루를 잘 보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