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각종 전시관 등은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다. 지금은 마음껏 돌아다니질 못하니 답답한 마음뿐. 직업이 박물관 큐레이터이기에 세계 각 나라의 뮤지엄에 관심이 많고 방문할 기회가 잦았던 저자가 쓴 뮤지엄 여행 이야기는 코로나19로 방구석에만 머물고 있는 나에게 바깥공기와도 같은 활기를 제공했다. 뮤지엄이라는 공간이 주는 호기심과 기대를 간접적으로나마 누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글로 읽고 사진만 보아도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 정도로 신선한 자극을 주는 뮤지엄이었다. 다양한 구성으로 전시물을 갖춘 뮤지엄은 전시뿐 아니라 건물 자체로도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 많았다. 뮤지엄의 공간 미학 위주로 풀어낸 작가의 시선을 따라 관람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뮤지엄 여행!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건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태양의 배 뮤지엄과 한국 서울에 있는 한국 가구 박물관, 그리고 중국 시안의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이었다. 태양의 배 뮤지엄은 기자 피라미드 지구에 있는 달랑 배 한 척이 들어 있는 뮤지엄인데 멀리서 보면 거대한 피라미드 옆에 있어서인지 엄청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규모라고 한다. 사막 한가운데 피라미드에 왜 배가 있는 건지 뜬금없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사후 파라오가 낮과 밤에 다른 두 종류의 배를 타고 다닌다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피라미드만큼이나 태양의 배를 사막 속에 매장해 놓은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한국 가구 박물관은 박물관의 외관이 전시물의 쓰임새와 맞아떨어지는 형태라서 한국의 멋을 제대로 뽐낼 수 있는 곳이라 여겨진다. 정원이 잘 가꿔진 단아한 한옥에 그 쓰임 그대로 전시되어 있는 고가구가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빛이 나 보일 것 같다. 사전예약제로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관람할 수 있다고 하니 여유로운 가운데 한국의 미학을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리라.중국 시안의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은 실제로 보게 된다면 우선 규모 면에서 입이 딱 벌어질 것 같다. 진시황은 무슨 호사를 누릴 거라고 죽어서까지 무덤 속에 상상도 못할 장치를 해놓은 것인지 모르겠다. 아직 발굴이 다 되지 않았다는 거대한 규모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절대로 죽지 않겠다고 불멸을 꿈꾸면서 자신의 무덤을 만든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아이러니에 한편으론 씁쓸하고 인생의 허망함이 밀려들었다. 인간의 삶과 역사를 조명하게 만드는 뮤지엄이라는 공간에서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관람하게 된다. 여행에서 만난 뮤지엄이 그냥 스치는 한곳처럼 쓱 잊히는 게 아니라 삶에 대해 반추할 수 있는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되었으면 좋겠다. 뮤지엄이라 하면 흔히 유물 또는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관하며 전시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뮤지엄의 패러다임에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이책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의 뮤지엄은 단순히 작품관람을 위한 물리적공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관람객의 경험과 참여를 이끌어내고,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며 휴식과 영감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까닭에 뮤지엄에서 디자인의 역할과 기능은 점차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국립민속미술관의 디자인 담당 큐레이터이자 전시 디자이너인 지은이가 지난 10년동안 세계 각지의 뮤지엄을 직접 발로 누비며 기록해온 여행기이다. 공간 큐레이터는 공간연출, 전시방식, 커뮤니케이션 기법등을 다루면서 뮤지엄의 콘텐츠와 관람객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이책에서 지은이는 공간 큐레이터의 관점으로 뮤지엄의 공간 미학적 특징을 발견하고 세계 여러 뮤지엄에서 몸소 겪은 아름다운 관람 경험에 대해 서술하낟. 그리하여 기존에 역사와 유물 중심으로 해석된 뮤지엄 소개서나 관광 안내서에 실린 획일적 내용과는 다른 시선으로 뮤지엄을 만나게 해주는 것 같다. 이 책에서 가장 신선했던 부분은, 뮤지엄이라는 장소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존 이미지와 고정관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이다. 뮤지엄을 "오래되고 고루한 물건을 진열해 놓은 정지된 공간"으로 기억되는것을 안타까워 하면서 뮤지엄의 변화된 기능과 확장된 역할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