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에서 가끔 보던 프로였는데 책으로 정리되어 일목요연하게 잘 읽을 수 있었다. 고려사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교과서 정도에서 보고 이후로는 접할 일이 많지 않았는데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고, 현재 우리의 외교와 문화를 비교해 보았을때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필독서였다. 우선 사대주의 라는 말이 조선시대에 나온 용어, 개념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고려와 조선이라고는 하지만 두 왕조는 너무나도 다른 문화, 특히 외교분야에서는 같은 한민족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고려는 그야말로 실리외교, 특히 고려는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뿌듯함 마저 느끼게 되었다. 강감찬 시절 거란족의 침입. 하공진이라는 충신의 희생으로 시간을 벌게 되었고, 이때 몽진한 왕조는 강감찬 장군의 지휘하에 결국 거란을 패퇴시키게 된다. 조선시대의 몽진과는 그 질과 전략이 다른 것이었다. 너무나 훌륭한 것은 고려가 그렇게 거란을 패퇴시키고, 다시금 거란에세 손을 내밀어 사대의 예를 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승자의 여유이자, 열강들과의 외교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 그 중심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추진하는 모습에서 고려시대의 선조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보내지 않을수가 없었다. 하공진은 목숨을 걸고 거란에게 퇴각할 수 있는 명분을 주게 되는데, 퇴각후 그는 거란으로 끌려가고 결국 그 곳에서 고려에 대한 충성을 잊지 않은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인물들이 왜 교과서에는 크게 언급되지 않은지가 안타까왔다. 이후 여진의 정벌. 윤관은 별무반을 구성하는 등 각고의 노력끝에 여진족을 패퇴시키고 동북 9성을 확보하게 된다. 해당 지역의 유지가 어렵기에 충분한 약조를 받아내고 여진족에게 그 지역을 다시 돌려주고 퇴각하게 되는데, 이 여진족이 훗날 금나라로 성장하게 되는데, 이 금나라가 그렇게 강성해진 후에도 당시 돌려받은 동북 9성에 대한 보은으로 고려를 침략하지 않고 특정 지역을 고려에게 귀속시켜주는 의리를 보이기도 한다. 이 대목이 상당히 감동적이었다. 외교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우방도 없는 법인데, 오랑캐로 취급하던 여진족, 아니 금나라가 저와 같은 멋진 정책을 폈다는 것은 그만큼 고려에 대한 존중과 두려움이 있었으리라. 묘청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왔다. 나 역시 고등학교떄 배운 짧은 지식으로 신채호 선생이 조선상고사에서 묘청에 대해서 진취적인 역사였다고 기술했다 배웠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묘청, 윤언이 등이 주창한 황제의 칭호와 새로운 연호를 쓰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단재 선생이 극찬하였으나, 세계 정세파악을 못하고 내부적인 준비도 없이 서경천도를 주장하다가 난을 일으킨 묘청에 대해서는 쓴 소리를 기록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해가 되었다. 윤언이같은 -이 분은 윤관의 아들이었다.- 인재를 이와같은 난으로 잃었다는 점일 안타까와 하셨다고 한다. 이후 무신정변에 대한 이야기는 교과서에서도 자주 접했던 내용이었고, 남자들은 가장 흥미를 가지면서 접하는 역사의 한 단원이라고 생각한다. 무신들의 철저한 계급확보로 무시받던 무인들이 정중부, 이의방, 이고를 중심으로 문신들을 살육하며 시작되는 무시무시한 무신 정변. 이 무신정변은 결국 배신과 배신을 거듭한 결과 난의 중심인물이었던 정중부, 이의방, 이고 모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천민의 자식으로 태어났던 이의민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서 폭정이 시작되었고, 무신정변에 참여하지 않은 신진세력인 경대승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세대교체가 가속하게 된다. 그러나 경대승 역시 오래기지 못하고 결국엔 최충헌에게 그 권력의 정점이 넘어가게 된다. 이와 같은 장면은 전두환의 군부쿠데타와 같은 현대사를 떠올리게 하였다. 그들 역시 한떄 엄청난 권력을 누렸으나, 물론 그 죄가 지금도 단죄되지 않았으며, 이는 두고두고 우리의 역사에 대한 정통성을 훼손시키는 일일것이고, 더 나아가 우리 후손에게 짐을 넘기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최충헌은 상당한 정치력을 갖춘 무인으로 그로부터 시작된 최씨 권력이 60년을 넘게 이어지게 된다. 최충헌이 그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동생을 살해하게 되는데, 이런 비극적인 장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볼수 있는 권력의 무서움이리라. 고려의 진취적인 외교를 보면서 이후 다른 고려편도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고려시대를 살아간 조상들에게 다시 한번 무한한 존경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