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그리스로마신화는 범신론(汎神論 / Pantheism)적인 신화이다. 여기서 범신론이란 우주를 포함해 낮과 밤 같은 자연현상과 자연 물질, 감정 등 모든 것이 신(神)이라고 여기는 세계관으로,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신들은 인간처럼 완벽하지 못한 것을 넘어 행실이 문란하게 그지없는 난봉꾼에 가깝다. 쇼펜하우어는 범신론을 평하기를, 만물에 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되려 완곡하게 무신론을 표현한다 평가하기도 했다. 신이 있다고 믿던, 그렇지 않던, 그리스로마신화가 만들어진 이후 2020년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을 바탕으로 인간의 기저를 이해하고, 인간이 만들어내는 경향성을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만물에 깃든 신을 보통 이하의 인간으로 묘사하는 그리스 로마신화가 널리 향휴된 시기가 르네상스 시대임을 감안한다면, 신 중심의 세상에서 인간 중심의 세상을 꿈꾼 14세기 후반의 인간들과 20세기 초반의 인간 군상은 여전히 유사하다. 우리는 여전히 인간 스스로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본인을 포함한 인간을 궁금해한다.
에로스 심리학의 최복현 저자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을 이야기하며, 인간 군상을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성욕을 기반으로, 성욕이 충족되지 못한 상태와 이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기저를 바탕으로 남과 여를 구분지어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 남성과 여성은 분명 기질적으로 상이하다. 그러나 그 상이함이 그리스 로마와 같이, 최복현 저자와 같이 성 기능에 기반한가에 대해선 긍정하기 어렵다. 저자는 남성의 성기능을 바탕으로 남성이 정복하려하고, 직선적이고, 과시욕이 강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고, 여성은 그대 반해 수동적이고, 유려하며, 이타적인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군상, 특히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기능을 횡단면으로 나뉘어 판단한 결과로 결과적으로 오류이다. 여성의 사회적 기능과 시대적 여성상을 생각해보면 그 변화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우월한 정자를 받아들이기 위해 능력있는 남성을 만나고자 여성이 노력한다 말하고 있다. 여기서 능력있는 남성은 시대상에 따라 변모한다고도 밝혔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남성의 능력은 사냥시대에는 사냥능력, 부족사회에선 완력, 군사력, 현대 사회에 이르러선 재화를 벌어들이는 능력이라 구분지었다. 그러나 사냥시대 이전의 씨족사회에선 사실 가족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씨족사회에서는 군락을 이룬 집단이 한데 모여 혼인이 아닌 난교를 통해 자손을 증식시켰고 그렇게 태어난 자식들은 역시 누군가의 어머니가 그 아이를 길어낸 것이 아닌, 씨족의 여인들이 지금의 어린이집과 유사한 개념으로 아이를 길렀다. 태어난 아이에게 모성애를 느낄지언정 그 부친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어려웠으며, 능력있는 정자를 받아들이기 보단 출산 그 자체에 의의를 두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문화화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 중 하나인 그리스 로마스 신화는 이미 그 자체로 인류 중심적 편향(bias)이 가득한 이야기들이다. 당시의 이동수당인 마차를 이용해 태양을 움직인다는 발상, 하늘의 신과 땅의 여신이 성으로 구분되어 있고 남성성의 하늘이 여성성의 땅을 굽어 살핀다는 개념 역시 이야기가 지어졌을 당시의 시대적 성 구분을 함유하고 있을 확률이 다분하다. 안타깝게도 시대가 변화했지만 그리스로마 신화를 지어낸 당시 사람들만큼이나 저자도 시대적 변화에 따른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기능을 제한하고 있다.
사실, 이 땅에 인간이라는 생명은 우연에 우연이 겹쳐져 탄생했다. 아마도 지구상에 미생물이 증식한 이후 번개와 같은 스파크로 인해 단세포가 탄생했을 것이고 단세포가 무한히 증식하면서 만들어낸 오류가 다세포인 생명체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단세포에는 죽음이 없다. 영원히 본인을 복제해 나갈 뿐이다. 그러나 인간을 포함한 모든 다세포 생명체는 반드시 죽는다. 반드시 죽기에 다세포 생명체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유전정보(DNA)를 남기고자 후손을 남긴다. 그 후손을 남기기 위한 전략과 수단이 성교이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성교의 기능과 역할은 다세포 생명체가 가진 필연적 죽음에 앞서 후손에게 선대의 유전정보를 남기어 대물림하는 것뿐이며, 인간을 포함한 짐승은 이를 근원적으로 기쁘게 생각하고 있고 이것이 쾌락이라는 명사로 불려지고 있다. 물론 성욕은 우리에게 많은 감정과 에너지를 준다. 그러나 문명세계를 살고 있고, 태어나 개인/사회/문화적으로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 후천적으로 완성되어진다라고 밝혀진 지능을 갖춘 인간이 다른 다세포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성기만 바라보고 산다고 평가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적어도 필자는 그런 삶을 영위하고 있지 아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