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다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프리다이버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단지 목차가 끌려서 집어들었던 책이다.
해수면 - 수심 60피트 - 수심 300피트 - 수심 650피트 - 수심 800피트 - 수심 1000피트 - 수심 2500피트 - 수심 10000피트 - 수심 28700파트...
해수면에서부터 바다 가장 깊은 곳까지의 여정은 어떠할까? 맨몸으로 바다와 육지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프리다이버를 보면서 저자는 알려지지 않은 프리다이빙의 세계를 파고들게 된다. 그 기나긴 여정 동안 프리다이버들은 지구의 생명과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새로운 발견에 눈뜬다. 수백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서도 엄청나게 정교한 의사소통을 주고 받는 고래,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정확히 수직으로 헤엄치는 상어, 수심 730미터 아래에서 80분간 숨을 참으며 유영하는 바다표범, 초심해층에서 빛 한 점 없이 살아가는 심해 생물들의 신비로운 삶은 바다 깊은 곳에서 시작된 인간 진화의 자취를 봤다고 한다.
저자는 저널리스트였다. 수영을 할 줄 안다는 이유로 그리스 남부 칼라마타에 취재를 가는데 그 곳에서 저자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난다. 세계 프리다이빙 챔피언십을 취재하면서 프리다이빙이 생소했던 저자는 프리다이빙의 규칙과 스타 선수들을 조사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잘 모르는 분야지만 어려울 건 없어보였던 그 운동이 미라클로 다가온 건 경기가 시작된 직후였다. 스쿠버 장비는 커녕 산소줄, 구명조끼, 오리발조차 끼지 않고 수영복만 달랑 걸친 선수들이 건물 30층 높이의 수심까지 잠수했다 올라왔다. 그게 말이 되는가?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나는 흔한 스노쿨링 할 때도 구명조끼, 오리발도 미덥지 않아 스노쿨링 가이드 허리줄을 꼭 잡고 다니는데 수영복만으로 잠수한다는 것 자체도 상상이 안되는 나다. 그런 나에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너무나 생소하고 무섭다. 수영을 할 줄 아는 저자의 충격이 나만큼은 아니겠지만 놀란건 매한가지인가 보다.
저자는 몸소 프리다이버가 되어 그들의 세계를 탐색해보기로 했다. 전세계의 수많은 프리다이버와 과학자를 만나 바다와 그 안에 간직된 인간의 가능성을 탐사하고 기록했다. 1년 6개월간 푸에르토리코에서 일본, 스리랑카, 온두라스를 떠돌면서 식인 상어 등지느러미에 위성 수신기를 부착하는 사람을 만났고, 수제 잠수정(!)을 타고 수천 피트 물속으로 내려가 야광 해파리들과 교감을 나눴다. 아직 이름조차 없는 온갖 바다 생물들을 보면서 가이아의 숨결을 느꼈따. 돌고래에게 말을 걸고, 고래의 말을 들었으며 세상에서 가장 큰 포식자와 눈을 마주치며 헤엄도 쳤다. 지구상에 있는지도 몰랐던 수중 벙커에서 질소에 중독되어 기절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련의 취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인간이 생각보다 더 밀접하게 바다와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다. 바다의 끝은 땅이고 그 땅은 육지로 이어져있다. 태초에는 하나의 땅이었을 그곳이 용암이 터지고, 홍수가 내리고, 빙하가 떠내려오고, 온갖 침식작용이 이루어지면서 바다와 육지로 나뉘어졌을 뿐이다. 아니, 나뉘어져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바다 위에서 붕붕 떠다니다 살짝 내려갈랑말랑 할 때다. 사실 나는 수영을 할 줄 알았다. 덩실덩실 물의 흐름을 따라 떠다니는 걸 좋아했었다. 그러다 어느날인가 바다 위에서 갑자기 훅 내려가는 느낌을 받고 졸도를 한 적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수영을 안하게 되었다. 아니, 못하게 되었다.
그 때 내가 경험한 게 바로 수심 40피트였나보다. 그 쯤 내려가면 부력과 중력의 힘이 역전되면서, 몸을 위로 떠미는 물의 부력이 약해지고 아래로 끌어내는 중력이 세지기 시작한단다. 저자는 그 지점을 '심해의 문'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니까 나는 심해,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나자빠진 것이다. 인간의 몸에는 수중과 육상 모두에서 적응할 수 있는 반사신경(포유동물 잠수 반사)이 있다고 한다. 깊이 들어갈수록 반사작용도 더 강력하게 일어나고, 엄청난 수압으로부터 몸속 기관들을 보호하기 위한 물리적 변화가 크게 일어나기 시작한다. 여기서 놀라운 점! 이 반사신경들이 일어나면 인간의 몸이 잠수에 능한 동물처럼 변한다고 한다. 내가 그 변환점에서 몇 분만 더 정신을 차리고 참았다면 인어가 될 수 있었을까? 다시 구명조끼를 벗고 싶은 마음이 살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