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대륙을 재패했던 몽골제국은 14세기 이후 어떻게 되었는가? "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이러한 질문은 나처럼 역사를 좋아하는 이들, 특히 유목 제국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가져본 질문일 것이다. 이 책은 14세기 중반에서 18세기 중반 사이의 400여 년에 걸친 몽골제국의 후기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 영향력은 나의 상상력을 초월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무지함을 느끼는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 눈을 뜨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울루스, 일칸국, 차가다이, 티무르 등과 같은 용어들이 생소한 이들이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약간의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다행히 책에 수록된 지도가 당시 지리적인 측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러한 주제를 다룬 국내 유일한 책이지만, 족보만 뒤지다가 끝나버려 큰기대를 하며 읽기 시작한 사람을 서서히 지치게 만들기도하는 특이한 책이다.
유라시아 대륙을 발 아래 두었던 몽골 제국의 패권은 길게 이어지지 못한 채 금세 붕괴했지만, 세계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남겼다. 하나는 유라시아 전역을 묶어내는 광대한 네트워크로 자리잡아 기술, 물자, 사람이 이동한 것이었고, 둘은 초원의 유목 세력의 영향을 받은 강력한 후계 국가들이 자리잡게 된 것이었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하여 초기 근대 유라시아에서 아주 특징적인 국가 형태인 ‘화약제국’이 등장했다. 몽골 제국의 조직화 방식을 받아들인 강력한 군사 집단이 상업을 통해 축적한 부를 대포를 비롯한 화약 무기에 투자했기에 붙은 이름이었다. 정치적 권위, 군사적 조직, 혁신적 기술을 결합한 이들은 정주세계(농경을 위주로 정착해 살아가는 세계)와 유목세계 양편에 걸쳐 지배권을 확립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오스만 제국, 사파비 제국, 무굴 제국은 오늘 유사한 국가들이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공간에서도 형성되었다. 하나는 러시아 제국이었다. 북유럽과 중동을 잇는 수계 무역 네트워크로 성장한 키예프 공국은 초원의 칸들의 지배를 받으며 급격히 ‘아시아적’으로 변했다. 몽골과 튀르크의 언어, 문화, 관습이 러시아로 유입되어 강력한 공후들이 지배하는 러시아 전제 왕권의 특징적인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중 대표격은 모스크바 공국이었는데, 그들이 여전히 상업 도시국가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던 북쪽의 노브고로드를 멸망시킨 것은 러시아 역사의 이후 진로를 예시하는 것이었다.
동아시아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형성되었다. 명 제국은 원 제국을 몰아내고 한족의 지배권을 확립한 국가로, 여러 면에서 몽골 통치의 안티테제를 추구했다. 주원장은 해금령을 내리고 자유로운 상업에 제약을 가했으며, 수도를 초원에서 멀리 떨어진 남경에 정함으로써 한족 정권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었다.
하지만 이미 몽골 통치를 경험한 중국이 그 유산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었는데, 이는 어쩌면 쿠빌라이를 롤 모델로 삼았을 영락제 때 극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는 정주세계와 초원세계 가운데에 있던 북경으로 다시 수도를 천도하였고, 바닷길을 열어 세계 제국으로서의 위엄을 다시 보이고자 하였다. 결정적으로 그는 수십만 대군을 동원해 명의 가장 극심한 안보 위협이었던 오이라트(Oirat; 몽골 서부 부족) 몽골을 정벌하고자 하였다. 몽골 지배의 경험은 중국 통치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각인되었던 것이다.
17세기에 흥기한 만주의 청 제국은 중앙 유라시아적 특질을 더욱 강하게 보이면서, 명 제국을 포함한 이전 중국 왕조와 한층 구분되었다. 청의 만주족들은 일찍부터 할하 몽골의 유력집안과 통혼하면서 그들과 혈연적, 정치적 유대관계를 쌓았다. 거기에, 몽골을 통해 들어온 중국과 몽골의 관념 체계는 만주인들로 하여금 천하의 통치 원리를 주재하는 강력한 지도자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였다.
거기에 그들은 모피 무역을 통해 축적한 부로 강력한 화약 무기를 갖추었고, 이를 중국, 나아가 내륙 아시아 정벌전에 적극 활용했다. 청 제국은 분명 중국을 정복하면서 중화제국의 통치원리와 가치, 문화를 광범위하게 받아들였지만 동시에 몽골에서 발전시킨 내륙 아시아 제국의 원리도 적극 수용함으로써 “키메라의 제국“(구범진) 을 만들어나갔다고 한다. 이상 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