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있을 수 있겠지만, 해리포터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21세기를 대표하는 마법 판타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그 명성이 높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해리포터라는 책이 가지고 있는 작품성과는 별개로 말이다(사실 나는 책을 볼 때 지극히 흥미위주로 접근하고, 작품성은 따지지 않으며 따져볼 줄도 모른다).
내가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는 것은 당연하지만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읽어본 지가 너무 오래된 터라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해리포터의 장면들은 모두 영화로 구현된 시각 자료들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첫 등장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이고, 나는 해리포터의 첫 시리즈를 초등학교 저학년 때 처음으로 읽었으니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지금에서 그 내용을 기억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내가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책으로 읽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영화와 다른 소설 원작의 디테일을 다시금 음미하면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가령 영화 속에서 헤르미온느(영국 발음상으로는 헐마이오니라는 괴상한 이름) 그레인저는 어떤 상황에서는 침착하고 똑똑한 인물로, 론 위즐리는 영화 속에서 어떤 상황에서는 맹한 인물로 나온다(마법사의 돌 시리즈에서 체스를 둘 때를 제외하고는). 하지만 실제로 소설을 읽어보면, 실전이나 위기의 상황에서는 헤르미온느는 기본적인 것도 잊고 허둥대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오히려 그러한 상황에서 론이 침착하게 대응하는 의외의 매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해리 포터, 론 위즐리,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3인방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때때로 보완해주며 최고의 케미를 보여주는 조합인데 이러한 부분을 영화에서 잘 살리지 못하고 모든 좋은 점이 헤르미온느에게 몰아주기 형식으로 구현된 것이 해리포터의 팬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어쨌거나, 소설의 초입부를 읽으며 다시금 해리포터 시리즈를 처음으로 접했던 초등학생 소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전히 해리의 이모와 이모부인 더즐리네 가족은 고약하고 못돼 보였으며, 알버스 덤블도어는 모든 시리즈를 끝까지 정주행하고 나서 다시금 그를 1편에서 보았을 땐 더욱 고귀하고 대단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역시 영화보다는 책이 더 몰입감이 높고, 더 큰 상상력을 자극하게 만드는 느낌을 책을 읽는 내내 받았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놀랍게도, 비슷한 류의 반지의 제왕이나 여러가지 다른 소설 기반 영화들이 여러 부문에서 상을 받았을 때 단 하나의 제대로 된 상 조차 받지 못한 비운의 영화 시리즈였다. 그 원인은 굉장히 다양했겠지만, 작가인 조앤 K 롤링의 인종차별주의적 시각과 여러가지 쓸데 없는 고집을 온전히 수용해 줄 감독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뛰어난 감독들이 해리포터를 맡아 연출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을 뻔했음에도 그런 기회들을 모두 날려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해리포터 영화 자체로는 큰 매력도를 일반 대중에게 주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팬의 입장에서, 소설과 달라진 부분, 소설에서 빠진 부분들을 짚어보면서 매번 영화를 볼 때마다 큰 아쉬움을 느꼈다. 그렇게 막 개봉한 영화를 보고 시각적 즐거움을 느낀 뒤, 채워지지 않은 아쉬움은 다시 집에 돌아가서 해당 부분을 책으로 읽으면서 채웠던 기억이 있다. 어쨌거나 나에게는 인생 최고의 작품인 해리포터가 영화로서는 다른 이들에게 큰 인상과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 내심 지금까지도 아쉬울 따름이다. 나는 그런 영화들마저도 편당 10회가 넘게 시청했을만큼 너무나 해리포터 시리즈를 사랑했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해리포터 시리즈는 선뜻 책으로서 시작하기에 그 양이 적지 않음은 사실이다. 마법사의 돌, 비밀의 방, 아즈카반의 죄수, 불의 잔, 불사조 기사단, 혼혈 왕자, 죽음의 성물까지... 총 7편으로 이어지는 대장정을 선뜻 시작하기엔 부담감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기왕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기로 결심한 독자들이라면, 마법사의 돌을 시작으로 해리포터의 매력에 빠져들어 완결의 순간에 느껴지는 공허함과 아쉬움까지 느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