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와 프랑스 파리
19세기 인상주의 화가의 대표주자 였던 마네는 파리 카페의 모습을 화폭에 많이 담았다. 그 당시의 사람들의 의복차림을 묘사하기도 하였고 (정장에 모자, 파이프를 문 셔츠차림의 남자, 화려하게 옷을 입은 여성들),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웨이트리스의 모습도 담아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19세기 파리는 외식 문화의 성지이자 선두주자 였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귀족이 주도하던 신분사회가 막을 내리고 시민이 주도하는 시민사회로 변화하게 되었다. 시민들은 세상을 즐기려는 시도를 많이 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에 따라 파리 도시 자체는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카페와 레스토랑 문화가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나폴레옹 3세가 파리 대개조 프로젝트를 하였다고 한다. 그는 파리르 날고 더러운 중세 성곽 도시에서 근대적 도시로 탈바꿈시키려고 하였다고 한다. 이전까지 파리는 좁은 골목과 비위생적인 주택들이 즐비한 곳이었지만 나폴레옹3세가 오스만 남작을 시켜 도시 개조를 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새로운 도로와 주택이 들어서고, 배수시설이 재정비되면서 공공시설이 건립되는 등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크게 변모하게 되었따. 녹지 공간과 가로수도 이 당시에 구상되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 때 파리 주변의 18개 소읍이 파리시로 편입되는데, 이게 오늘날의 확대된 파리의 모습이라고 한다.
파리 대개조 프로젝트는 20년 가까이 진행되었고, 도시를 전면적으로 바꾸게 되었다. 신설된 기차역을 중심으로 95킬로미터의 대로가 놓였고, 여기에 가로수와 가스등이 설치되어 심야에도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변화된 파리를 목격한 예술가들은 그 자체로 영감을 얻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러 파리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인상주의 라고 한다. 급격히 변화하는 파리의 모습을 생동하는 필치로 그려낸 화가들이 인상주의 화가들이라고 한다. 모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19세기 파리를 무대로 새로운 예술을 그려냈다고 한다. 마네도 인상주의 화가중의 하나인데,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며 법조계에서 일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법대, 해군사관학교에 낙방하고 우여곡절 끝에 미술계에 입문 하게 되었다.
마네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풀밭위의 점심과 올랭피아가 있다. 그 당시 이 작품들은 굉장히 파격적으로 분류되었고 혹평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한다. 풀밭위의 점심은 야외에서 옷을 입은 남자와 옷을 벗은 여자가 함께 있는 모습이다. 이 여성은 매춘부이며, 이는 당시의 부유한 남성들이 매춘부와 놀고 있는 적나라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그 당시 굉장히 파격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이후 올랭피아 또한 마찬가지였따. 올랭피아 속 여인도 옷을 벗은 채 침대에 누워서 관람자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 전통적인 누드화와 달리 현실적이며 신화적인 인물로 보이지도 않는다.
이 두 그림들은 겉으로는 예의와 교양을 차리면서 실상은 향락에 빠져사는, 당시 프랑스 지배층의 위선을 꼬집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과 올랭피아는 화가의 도발이 깃든 작품이자 아방가르드, 소위 전위 미술의 시작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마네는 카페 콩세르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카페 콩세르는 오늘날로 말하면 극장식 카바레였고 이곳에서 파리의 귀족과 하층민, 부르주아와 노동자가 한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가수나 무용수의 공연을 즐기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마네는 이 공간에서 노동자와 신사, 귀족여성과 매춘부가 공존하는 상황, 나아가 이런 혼재된 군상을 그림 소재로 적극 활용한다. 마네의 그림을 보면 그 공간안에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특히 카페콩세르 작품에서는 웨이트리스의 존재감이 매우 크게 보인다. 마네의 시선을 사로잡은 웨이트리스는 그의 다른 그림에서도 계속 등장하게 된다. 이는 웨이트리스가 서빙하는 새로운 종류의 카페가 생긴 것에 대한 새로운 변화였던 것이다. 마네는 이러한 변화를 중점적으로 소재로 활용하고 생동감 있는 인상주의적인 그림을 그려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