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여년간 읽은 역사 서적 중 국내외 독자에게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대표적인 책으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가 있다. 전자가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역사를 다루었다면 후자는 문명사라는 관점에서 어떤 이유로 인해서 특정 대륙에서 문명이 먼저 발생했고 문명의 전파 및 발전 속도도 대륙별로 차이가 나는지 분석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대륙간 또는 국가간 발전상의 차이는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인종이나 부족들간의 능력의 차이가 아닌 기후와 지리라는 환경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었음을 보여주며 그러한 환경의 차이를 유발한 지질학적, 생태학적 요인을 살펴본다. 최근에 접한 이 책 '루이스 다트넬'의 '오리진'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인간과 지구의 공진화라는 관점에서 어떤 지질학적 요인에 의해 생명체가 지구 상에 등장했고 진화가 촉발되었으며 현생 인류의 등장을 유발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판구조론 등 지질학적 관점에서 지구 환경 변화를 촉발한 지질학적 변화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생명체, 더 나아가 우리 인간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45억년 전에 지구가 태어나고 대략 20억년이 지날 때까지 지구 상에는 산소가 없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해저 열수공 근처에서 황화합물을 원료로 생존했던 일부 단세포 생물들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산소 기반 생명체는 전무했다. 먼 옛날의 암석을 조사하는 지질학자들은 24억 2천만년 전에 산소 농도가 처음으로 크게 증가한 증거를 발견하였는데 이 사건을 '대산화 사건' 또는 '산소 대폭발 사건'이라고 부른다. 지구 전체에 산소를 공급한 장본인은 바로 원시 바다에서 헤엄치면서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내뿜은 초기의 남세균이었다. 비록 당시 남세균이 만들어낸 산소 농도가 1% 수준에 불과했지만 대산화 사건은 지구 역사상 가장 길고 극심한 빙하시대를 유발했다. 초기 지구 대기에 온실효과를 유발하며 가득했던 메탄을 증가한 산소가 반응하며 제거함으로써 지구를 감싸던 담요를 벗겨냈다. 기온이 곤두박질치면서 전 세계적 빙결이 일어났는데 거의 모든 지표면이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인 이 상태를 '눈덩이 지구'라 부른다. 몇차례의 눈덩이 지구의 생성, 그 이후 화산활동을 통한 급격한 온실효과 및 해빙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광물질 유입에 따른 남세균의 급격한 번식은 산소 농도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산소 농도의 증가는 캄브리아기 생명체의 폭발을 촉발하였으며 진화의 사슬이 이어지며 현생 인류의 탄생에 까지 이르렀다.
호미닌의 진화에서 중요한 변화를 낳은 사건들은 모두 동아프리카에서 일어났다. 이 지역은 콩고와 아마존, 동인도제도의 열대 섬들과 같은 위도에서 띠를 이루어 적도를 빙두르는 우림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대로라면 동아프리카에도 울창한 숲이 자라고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건조한 사바나 초원이 펼쳐져 있다. 이러한 기후 변화의 근본 원인을 판구조론에 입각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구의 맨 바깥쪽 피부에 해당하는 지각은 부서지기 쉬운 달걀 껍데기 같은데 그 아래에는 뜨겁고 걸쭉한 맨틀층이 자리잡고 있다. 지각은 많은 판들로 쪼개져 있고 판들은 지표면 위에서 이리 저리 돌아다닌다. 지구의 역사는 이 판들이 뭉쳤다 흩어지기를 반복한 과정이다. 판과 판이 만나면서 하나의 판이 다른 판 밑으로 섭입하고 그 경계 면에서는 산맥의 융기가 일어나거나 또는 뭉쳐있던 판들을 맨틀 층의 마그마가 분출되며 갈라 놓고 쪼개기도 한다. 동 아프리카의 기후변화는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의 충돌에 따른 히말라야 산맥의 생성, 인도네시아 해로의 봉쇄, 특히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마그마 분출에 따른 높은 산맥의 융기 등에 따른 결과였다. 열대우림 기후에서 사바나 기후로의 변화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우리 선조를 나무 위에서 육지로 내려오게 만들었다. 육지에서 직립 보행하고 손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뇌 용량의 증가라는 진화의 과정을 유발되었다.
지구 역사의 마지막 찰나 등장한 우리 인간은 기술을 갖게 된 지구 유일한 존재로서 우리가 지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는 무지에서 파생된 오해다. 지구가 우리 서식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를 만들어 왔다.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우리가 지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믿는 지금 이 순간도 그렇다. 인류는 화석 연료를 사용함으로써 빙하를 녹이고 영구 동토층의 메탄 가스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있다. 빙상의 물과 메탄 가스는 다시 지구의 기후를 빠르게 올리고 있다. 여러 기후 요인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기후 변화를 가속화하는 '임계연쇄반응'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반응의 시작은 우리가 했을지 몰라도 이후 주도권은 지구에게 있다. 인간이 손쓸 수 있는 때는 생각보다 금새 지나갈 것이다. 지구 상의 생명의 역사를 통틀어 지금까지 있었던 5번의 대멸종과는 다르게 6번째 대멸종은 우리 인간이 유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멸종의 원인은 지구 판구조가 변화함으로써 생성된 현무암이 지표면 위로 대량 분출되면서 촉발된 기후환경 변화에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인류가 맞이할 대멸종은 무분별하고 광범위한 화석연료 사용을 통해 그 단초를 제공한 우리 인간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으며 그 부담도 전적으로 우리가 부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