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옛 유럽의 모든 세력이 연합하여 이 유령을 잡기 위한 성스러운 몰이 사냥에 나섰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견해와 의도를 숨기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 질서를 폭력적으로 전복해야만 달성될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천명한다. 지배 계급은 공산주의 혁명이 두려워 전율할지도 모른다. 프롤레타리아들은 공산주의 혁명에서 자신들을 묶고 있는 족쇄 외에는 잃을 게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
만국의 프롤레타이아여, 단결하라!
읽어 보고 다시 읽어 보아도 명문이 아닐 수 없으며, 프롤레타리아의 가슴에 이렇게도 강력하게 불꽃을 피울 수 있는 선언이 있는가. 공산주의의 조류가 시들어 버린 현재에도 결코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다시금 일깨우는 선동적인 문구이다.
"실패한 예언들은 종종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예언이 빗나갈수록 더욱 극성스럽게 끓어오르는 종말론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모순과 갈등, 불안과 고통으로 가득 찬 현실을 넘어서는 내일에 대한 희망은 언제나 우리의 가슴을 촉촉히 적셔준다.
설령 이런 실천이 실패로 끝난다 하더라도 그 출발점을 이루었던 절대 지식이 반증된 것은 결코 아니다. 마르크스가 예언했던 공산주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결국은 자기 모순으로 멸망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은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와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냉소만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예언은 빗나간 것이다.
그러나 예언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 반드시 예언의 지식이 잘못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에게 죽음을 가져올 무기만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 무기를 들게 될 사람들, 즉 현대의 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를 낳은 것이다." 선진 산업국가에서 이루어진 노동자들의 시민 계급화가 노동 시장의 세계화를 통해 다시 벌어지고 있는 빈부의 격차로 취소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약육강식이라는 밀림의 법칙만이 통용되는 신자유주의의 세계 시장에서 노동자들은 다시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르주아는, 마르크스가 예언한 것처럼 '자신들의 노예에게 노예 상태로서의 실존을 보장해줄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지배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인들이 노예라는 말을 죽도록 싫어한다는 사실만큼이나 이 예언은 사실일 수도 있다. 마르크스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희망과 파괴의 의미로 다가오는 것도 어쩌면 이러하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자본주의의 현실이 대부분의 노동자들을 노예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는 혁명적 실천력을 배양하고 싶었을 것이다. 노예들이 자신의 실존을 통해 더 이상 훼손될 수없는 인간성의 뿌리를 깨달을 때, 비로소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역설적인 역사의 논리이고, 얼마나 아름다운 인류의 희망인가.
그러나 마르크스가 예언한 대로 자본주의가 자기 모순에 의한 파국을 맞이하기는커녕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들에게 단순한 실존을 넘어서는 행복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는 아무도 공산주의를 유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은 공산주의를 무서운 전염성을 가진 이데올로기적 병원균으로 여기지 않으며,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는 혁명 주체들로 파악되었던 노동자들조차 공산주의의 이념을 신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이념에 대한 동경마자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예리하게 분석한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은 모두 해소된 것일까?
만약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현실적 문제를 은폐하는 수많은 기제 속에서 우리의 인간성을 여전히 훼손하는 문제들을 함축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희망과 비판의 방향이 될 수 있는 이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제한된 실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우리를 억압하고, 노예로 만들고, 황폐화하고, 멸시하는 모든 관계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마르크스는 여전히 희망의 기호로 남아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고 인간 해방을 이룩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의미한다면 데리다가 말하는 것처럼 "마르크스 없이는 미래가 없을 것이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