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작가가 한국현대사에서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사실을 엮어 만든 이야기다. 작가가 사실을 선택한 기준은 무엇인가. 현재를 이해하고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의 여부다.
최근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현재의 사실'을 살펴보자. 신문과 방송은 해마다 연말이 되면 '대한민국 10대ㄱ 뉴스'를 선정한다. 언론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크게 보면 대개 비슷하다. '2020 국내 10대 뉴스'는 코로나 19사태, 부동산 대란, 민주당 총선 압승, 검찰총장 징계, N번방 사건, 정경심 유죄선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과 오거돈 부산시장 사퇴, 북한의 남북공동 연락사무소 폭파, 이건희 회장 사망, BTS와 영화 기생충의 활약 등이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두려운 일, 기쁜 일, 화나는 일, 슬픈 일, 걱정스러운 일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 현대화 역사전쟁의 한 주체는 '근대화 세력', '산업화 세력', '보수세력', '애국세력'을 자처하지만, '유신잔당', '5공잔재', '특권세력', '냉전세력', '수구꼴통'이라고 비난받는 세력이다. 이 세력은 정부 수립 이후 1997년까지 대한민국의 경제, 사회, 정치적 권력을 모두 장악했지만 1988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대통령 자리 하나를 잃었고, 2017년 이후에는 청와대에 이어 의회권력도 상실했다.
역사전쟁의 또 다른 주체는 4.19를 옹호하고 5,16을 비판하며 민주화를 이룬 주역임을 자부하는 '민주화세력'이다. '민주세력', '양심세력', '진보세력'을 자처하지만 반대 진영에서는 '빨갱이', '아마추어', '좌경용공', '종북좌파'라고 하는 그들은 한국 사회의 모든 영역의 낮은 곳에 흩어져 있었다. 인권과 사회정의, 한반도 평화와 환경보호를 실천하려고 애쓴 지식인, 전문가, 시민단체, 노동조합, 협동조합, 언론운동단체가 여기 포함된다. 그들은 주로 온라인에서 소통하며 자끔 오프라인에서도 대규모로 결집해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집회',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 같은 대형 이벤트를 만들었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있지 않았다. 서로 지속적으로 연대하거나 이익을 주고받지 않으며 자기네끼리 종종 다투기도 했다. 1987년 평화민주당으로 출발해 통합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열린우리당 등을 거쳐 더불어민주당이 된 거대 자유주의 정당이 그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한다. 2020년 민주화세력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했다.
한국현대사는 두 세력의 분투와 경쟁의 기록이며, 때로 피가 강물처럼 흘렀던 까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싸움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국민이 두 세력 모두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시대와 가치를 대표하면서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두 세력을 모두 인정하는게 가능한 일인가? 그렇다. 산업화시대와 민주화시대는 모두 우리의 과거이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의 다툼은 어느 곳에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는 한 사회에 동시에 존재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크다. 국민성을 거론하거나 정치의 후진성을 개탄할 필요는 없다. 사회경제, 정치, 문화적 변화 속도가 너무나 빨랐던 탓에 생긴 현상일 뿐이다.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며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는 내일 오는게 아니라 우리 내면에 이미 들어와 있다. 우리가 이 책에서 나눌 수 있는 것으 우리 안에 있는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감정이다.
대립하는 역사인식의 배후에는 대립하는 이해관계뿐 아니라 서로 다른 경험과 인생관이 놓여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한다. 어떤 사람은 좋아하고 존경하며, 어떤 사람은 싫어하고 경멸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도 되도록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훌륭하다고 여겨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은 갠찮지만 싫어하고 경멸하는 감정을 노출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역사적 사실은 진실으 이야기 하지 않는다. 사실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며 역사가가 허락할 때만 말을 한다. 사실과 역사가는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데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