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자 칼 폰 린네(1707~1778)가 창안한 생물 분류 체계에서 우리 인류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다. 과학자들이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나 '호모 에렉투스'와 같은 이름을 붙인 인간 종이 여럿 있었지만 모두 멸종했다. 지금은 사피엔스 말고 다른 종의 '호모'가 하나도 살아 있지 않으니 호모 사피엔스를 사피엔스로 줄여 써도 죌 것이다. 사피엔스의 여러 증력 중에서 단연 빛나는 것은 의사소통 능력이고, 의사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은 언어다.
같은 말을 저마다 다른 뜻으로 쓸때 생기는 오해와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이 책에서 자주 쓰게 되는 중요한 말의 뜻을 잣자는 분명하게 해 둔다. '역사'를 국어사전에서는 '인간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이라고 한다. 사전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기는 해도 크게 보면 다 비슷하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역사의 뜻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인간의 삶과 사회의 변화 과정 그 자체이고, 둘째는 인간의 삶과 사회의 변화 과정을 문자로 쓴 기록이다. 그러나 역사는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사실로 엮어 만든 '이야기'이다.
사실 없이 역사를 쓸 수도 없지만, 그저 사실을 기록하기만 한다고 해서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실의 기록'은 역사 서술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역사는 '인간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에 관해 문자로 쓴 이야기'이다. 인간 사회의 역사는 다른 것의 역사와 다르다. 역사가들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역사에 대한 도덕적 감정을 텍스트에 투사하며, 독자들으 그 감정을 느낀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겻렬한 감정 표출을 동반한 '역사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역사는 사실과 역사가의 대화"라거나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할 때, 역사는 사회가 시간의 흐름 안에서 변화해 온 과정을 서술한 문자 텍스트를 말한다. 역사를 반드시 문자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말로 할 수도 있고, 그림으로 나타내도 좋으며, 영상과 소리를 결합해도 된다.
이 챙에서 역사는 언제나 '인간의 삶과 사회의 변화 과정을 이야기하는 문자 텍스트'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역사의 역사'는 무엇인가? '인간과 사회의 과거에 대해 문자 텍스트로 서술하는 내용과 방법이 변화해 온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문자로 쓰는 사람은 역사가,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역사학자 라고 하자. '역사학'은 학문이고, '역사 서술'은 예술이다. 학문과 예술 둘 모두를 하는 이도 있지만 어는 하나만 하는 사람도 있다. 역사학자는 분석하고 연구하고 비평하며, 역사가는 창작한다. 이 책은 역사학자가 아니라 역사가를, 역사 이론서가 아니라 역사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역사 서술은 사실을 기록하는 작업이자 사회 변화의 원인과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활동이며 어떤 대상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 행위이기도 하다. 성실한 역사가는 사실을 수집해 검증하고 평가하며 중요한 역사의 사실을 정확하게 기혹한다. 뛰어난 역사사는 사실들 사이의 관계를 탐색해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혀내며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과 역사 변화의 패턴 또는 역사법칙을 찾아낸다. 위대한 역사가는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로 엮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독자ㅢ 내면에 인간과 사회와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의 물결을 일으킨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해 과학을 껴안으며 예술로 완성된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훌륭한 역사는 문학이 될 수 있으며 위대한 역사는 문학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다룬 역사서들을 읽으면 독자들은 흥미로운 역사의 사실을 아는 즐거움을 얻고 사실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더 귀하게 다가오는 것은 저자들이 문장 갈피갈피에 담아 둔 감정이 될 것이다. 역사의 사실과 논리적 해석에 덧입혀 둔 희망, 놀라움, 기쁨, 슬픔, 분노, 원망, 절망감 같은 인간적, 도덕적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역사의 매력은 사실의 기록과 전승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데 있음을 저자는 푠현한다. 적극 공감하며 모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