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은 2018년 출간되어 사회의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상당한 관객을 동원하여 관중의 가슴을 뭉클게 한 작품으로 소개되었다. 책의 스토리와 구성을 잘 알지 못한채 영화를 한 번 보리라고 생각던 중에 독서통신을 통해 책으로 접하게 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알지 못할 부끄러움과 분노에 젖어들며 하루밤을 꼬박 새우며 읽을 정도로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수작이다.
김지영씨는 책의 제목에서 나오듯 82년생으로 책에서는 2015년을 중심으로 서른네 살이다. 31살에 결혼해 33살에 딸을 낳았으며, 세 살 많은 남편과 결혼하여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거주한다. 남편은 IT계열의 중견 기업에 다니고 김지영 씨는 작은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남편은 밤 12시가 다 되어 퇴근하고, 주말에도 하루 정도는 출근한다. 시댁은 부산이고 김지영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친정 부모님도 서울에 거주한다.
나의 아내는 70년생이다. 김지영씨와 비교하면 12살이 많은 셈이다. 29살에 결혼해 30살에 딸을 낳았으며, 세 살 많은 남편인 나와 결혼하여 신혼에는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거주하였다. 남편은 은행에 다니고 있었고 나의 아내는 청소년 심리상담소에 다니다 결혼을 2달 앞두고 퇴사했다. 남편은 밤늦게 퇴근하였고, 주말에도 가끔 출근하였으며 시댁은 부산이고 나의 아내는 서울에서 태어나 친정 부모님도 서울에 거주하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나의 아내를 생각한다. 나의 아내도 김지영씨와 비슷한 삶을 살아왔으며, 그렇게 살아온 삶을 나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아내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씨의 학창 시절, 회사 생활, 결혼 생활에 이르기까지 여성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경험들을, 난 책을 읽으면서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보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김지영씨와 나의 아내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부분 여성들이, 나의 어머니도 포함하여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입 밖으로 드러내지 못한채 자신의 삶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돈어른,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예요. 저희 집 삼 남매도 명절 아니면 다 같이 얼굴 볼 시간 없어요. 요즘 젊은 애들 사는게 다 그렇죠.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주셔야죠"
이 책의 한 구절이다. 며느리도 딸이라고 하면서 시집간 딸이 와도 며느리는 친정에 보내지 않는 시부모에게, 친정으로 가겠다고 말할 수 있는 며느리는 몇이나 될까? 나의 아내는 나와 결혼하여 20년을 명절 당일 친정으로 간 적이 없다. 당연하다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 온 나에게 아내는 자금까지 한 번도 불편을 말한 적이 없으며, 장모도 그러함을 당연히 받아들였다. 이 구절을 읽으며 아내의 얼굴이 떠 오르고 가슴에서 뭉클솟는 부끄러움과 고마움과 죄책감에 눈물이 흐르는 듯 했다.
나의 딸은 99년생이다. 김지영씨와 비교하면 17살이 적은 셈이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학교를 다니지만 나의 아내와 같은, 김지영씨와도 같은 어린 시절과 학창 생활을 보내었고, 앞으로도 나의 아내와 김지영씨의 경험을 되풀이 할 것으로 생각된다. 나의 딸의 생활은 그렇지 않고 자신의 삶과 목소리를 내며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있겠는가? 나의 딸의 생활이 답답하고 안쓰러워진다.
나의 딸, 그리고 동 시대의 여성들이 살아갈 세상은 나의 아내와 김지영씨가 살아온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되어야 하고, 될 거라 믿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작가의 말에 동일한 책임을 느낀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더 크고, 높고, 많은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란다. 늘 신중하고 정직하게 선택하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김지영 씨의 모습에 딸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정당한 보상과 응원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말에 다시 한번 더 공감을 표한다.
이 땅의 또 다른 김지영이 더 행복하고 더 자유로워 질 수 있도록 김지영씨와 같이 살아가는 남성들의 고민과 반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