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만나려면 혼자일 줄 알아야 한다. 혼자일 때는 혼자임을 잘 누리고, 누군가 옆에 있을 때는 그 사람과 함께임을 잘 누리면 됩니다.
혼자일 줄 모른다는 것은 곧 나일 줄 모른다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만나려면 이 고독감과 불안감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 느낌을 대면해야 합니다. 적막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내 마음을 바쁘게 했던 많은 것을 내려놓으면서 나를 느끼게 됩니다.
인간의 진실은, 어느 날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결정하지 않은 삶을 자신이 원하지 않는 조건을 딛고서 살아내야 합니다. 인생의 황당함은, 나는 존재하겠다고 결정한 적이 없는데 어느 날 존재하는 나 자신을 발견 할 수밖에 없다는점에 있습니다.
자신 안에 있는 공허감과 고독감을 충분히 느껴야먼 이를 피해 달아나려 외부로만 향하는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마음에 빠져 있다는 것은 마음에 따라 반응하기가 바빠서 마음 자체를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삶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음은 죽음으로부터 도망가느라 자신 안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에 직면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고, 자기 자신에게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 과정에서 행복한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설사 자기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과정에서 행복했기에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태도를 분명히 할 때 무엇이 본질적 선택이고 무엇이 비본질적 선택인지 좀더 잘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할때 '왜 나는 저 사람의 존재 방식이 힘들지?'라고 자문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내 마음의 생김새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에 맞지 않는 타인을 만나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와 다른 선택과 행동을 한다고 해서 잘못된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갈등은 내 마음과 상대방 마음을 알게 되는 좋은 기회입니다. 가능한 자기 잘못을 더 생각하려 노력하다 보면 자신이 인간관계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잘못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그 사람의 잘못은 그 사람이 고쳐야 하니 나는 내 잘못만 생각해보는 것이 낫습니다.
논리를 비트는 심리에 딸려 가지 않으려면 먼저 자신이 심리에 딸려 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합니다. 자기 잘못을 의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고, 인간이기에 해야 하는 일입니다. 내가 한 입으로 두말할 수 있음을 의식하면 가능한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으려 노력하게 됩니다.
내 마음을 털어놓을 때 내가 사용하는 표현을 보면서 다시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화가 난 것에 딸려 가면서 화를 계속 내는 것과 화를 내는 자기 상태를 묻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일관성을 잃는 것에 관심이 없으면 자기 자신을 정당화 하는데만 빠져 있기가 쉽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 잘못을 지적할 때 그 사람의 말이 타당할 가능성을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철학적 성찰은 내 생각에서 그른 면을 보고 타인의 생각에서 옳은 면을 보게 만듭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 하더라도 그 영향을 내가 어느 정도까지 받느냐는 내 경향성에 따릅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라고 원망하곤하지만 그렇게까지 상처를 받는 것은 나의 특징입니다. 내 말을 알아 들어주는 사람에게 속을 터놓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질문을 받아보고 나에 대한 그 사람의 해석도 들어보면서 나를 느껴갈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본질적으로 충족해주지 않는 것에는 언젠가 회의를 느끼는 존재입니다. 죽음을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면 타인의 인정에 매달리게 되므로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인정을받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인간은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면서 그 일로 인정받고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연결감을 느낄 때 행복해집니다.
진짜로 내 삶을 살려면, 인생의 허무와 외로움에서 도망치고 싶어 본질적이지 않은 것에 매달리는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넘어 서는 것에서 의미를 느낍니다. 모두가 원하기 때문에 나도 원하면서 거기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