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가 무더운 두개의 강(유프라테스강, 티그리스강)이 흐르고 있는 드넓은 평원, 메소포타미아는 아프리카 대륙이 아니라 유럽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서아시아에 있다. 이 평원에 가보면 곳곳에 거대한 구릉이 보인다. 구릉들을 파헤치면 굳건한 성벽이 못븝을 드러내며, 이 구릉들은 거대한 옛 도시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이런 곳 중 하나가 바빌론이다. 한 때 세상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바빌론은 각지에서 모여든 상인들로 들끓었고, 강 상류 산악지대의 끝자락에는 이 근방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였던 니네베의 폐허가 남아 있다. 바빌론은 바빌로니아의 수도였고, 니네베는 아시리아의 수도였다. 이집트와 달리 이 넓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한 명의 왕에 의해 지배되었던 적이 거의 없다. 그리고 확고한 영토를 유지하면서 오래도록 지속된 왕국도 없었다. 여러 민족이 번갈아 가며 이 지역에 터를 잡았고 지배자도 여러번 바뀌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민족은 수메르인과 바빌로니아인, 그리고 아시리아인다. 수메르인은 문화 중 많은 것에서 이집트인보다 앞섰다. 문자는 이집트 문자와 달리 그림을 사용하지 않고 삼각형이나 쐐기 모양의 뾰족한 선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이 문자를 설형 문자라 부른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파피루스로 책을 만들지 않고 부드러운 점토판에 글을 쓰고 가마에 구워 단단하게 만들었다. 바빌로니아 왕들 중 한 사람은 거대한 비문을 남겼는데 이는 가장 오래된 법전으로 함무라비 법전이라 불린다. 아시리아인이나 바빌로니아인은 이집트인과 달리 화려한 그림은 남기지 ㅏㅇㄶ고 사냥, 포로, 전차, 전사 등의 모습을 남겼다. 바빌로니아인과 아시리아인은 몇 개의 행성들에 하루씩을 헌정하여 7일을 한 묶음으로 하는 일주일이 생겨났다. 당시 발견했던 행성은 다섯 개였으며 마르스(화성), 메르쿠리우스(수성), 주피터(목성), 베누스(금성), 사투르누스(토성)이라 불렀다.
문자는 글을 많이 써야 하는 사람들의 발명품이었다. 종교적인 글이나 찬송가 뿐만 아니라 편지나 계약서, 보증서 등을 자주 써야하는 사람들이 고안한 것이다. 첫 고안자는 상인이었다. 페니키아인은 이국 땅에 나가 있어도 고향을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들이 발명한 문자로 친구들에게 얼마든지 편지를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알파벳이다.
크레타의 왕들은 그리스 도시들을 지배하고 그리스인으로부터 공물을 받았던 것 같다. 이들 문명은 오래가지 못하고 기원전 1200년경 소멸하였다. 크레타는 이미 멸망했지만 새로운 이주자들은 찬란한 그 문화를 동경했고 새로운 도시들에 정착해 자신들의 성역을 건설한 후에도 옛날에 대한 기억을 이어나갔다. 이 새로운 민족이 바로 그리스인이다. 그리스인이 이주해왔을 때 그들은 아직 단일 민족을 형성하고 있지 않고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여러 방언을 사용했고 서로 다른 족장의 지배를 받았다. 그 다음에 이주해온 이오니아인은 그리스 전역에 터를 잡지는 않고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북부에 터를 잡았다. 이들은 도시를 건설해서 아테네 여신에게 봉헌하기도 했다. 아테네인은 이웃의 작은 섬들을 정복해나갔고, 페니키아인은 이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와서 아테네인과 무역을 했다. 그리스인은 기름과 곡식, 금속을 교역 물품으로 내놓고 페니키아인의 발전된 항해술을 배워 더 먼 해안 지대로 진출했고 여러 도시를 건설했는데 이런 곳을 식민지라 한다. 또한 그리스인은 페니키아인으로부터 문자로 글을 쓰는 방법도 배웠다.
메소포타미아 북부 산악지여게 사는 사람들은 페르시아인이었다. 이들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지배를 받았으나 키루스란 지혜롭고 용맹한 황이 이민족의 지배에서 백성을 구해내기로 결심하고 바빌론으로 진격하여 승리했다. 이로 인해 광대한 왕국의 지배자가 된 키루스왕이 포로로 잡혀 있던 모든 민족을 풀어준 것인데 이들 중 유대인들도 있었다. 그의 아들 캄비세스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파라오를 폐위시켰다.
페르시아를 물리친 그리스는 작은 반도이다. 이 반도에 사는 여러 부족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결합시키는 것이 있었는데 공통의 종교와 스포츠였다. 그리스인들은 제우스를 기리기 위해 4년마다 거대한 규모의 올림피아 경기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