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위나라를 세운 조조가 지은시의 구절에 보면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도 잠시나마 술기운에 기대어 시름과 걱정을 잊기를 바랬다. 걱정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 술을 마시기도 한다. 고대 유럽의 게르만족은 전투를 앞두고 두려움을 잊기위해 도수가 높은 맥주를 마셨고 취한 상태에서 전쟁터로 나가 싸웠다. 로마군은 술에취해 짐슴의 털가죽을 뒤집어쓰고 불에 달군 나무 장대를 쥐고 달려오는 게르만족 전사들을 보며 비웃었지만, 기원전 105년에 아라우시오에서 치른 전투에서 12만명이 전사하는 끔찍한 패배를 겪어야 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거나 고백할 때에도 술은 훌륭한 도구로 쓰인다. 헝가리에서 만들어진 포도주인 토카이 와인은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로부터 사랑의 묘약이라고 불렸으며, 왕실에서는 연애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토카이 와인을 비축해두었다.
현대인이 술을 마시는 가장 주된 이유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이다. 직장인들은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기 위해 힘든 일과를 마치고 술집에 들른다. 녹색 빛깔의 유리병에 담긴 희석식 소주이든 갈색 빛깔의 유리병에 담긴 맥주이든 또는 하양 색깔의 플라스틱 통에 담긴 막걸리이든 상관 없다.
술은 마시는 사람의 기분을 즐겁게 만든다. 비록 하룻밤이 지나고 나면 사라질 글거움이지만, 사람들은 그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 기거이 술을 마신다. 흔히 마시는 희석식 솢에서부터 우리 조상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막걸리, 수메르인과 이집트인도 마셨을 만큼 역사가 오래된 맥주와 포도주, 유럽의 뱃사람들이 항해를 할 때 물 대신 마셨던 럼주, 10.26 사태 당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마셨던 시바스리갈,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향한 복수의 일념이 담긴 바카디 151, 현대 중국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마오쩌둥이 즐겨 마신 마오타이, 각종 무협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죽엽청 등등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술의 역사를 끝까지 읽었다면 서로 연관이 엇어 보였던 술과 역사적 사건이 아주 밀접한 관계로 얽혀 있다는 사실에 놀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술에 인류의 수만 가지 생각, 감정, 습관, 문화 등이 담겨 있기에 우리는 술을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닌 역사의 매개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는 조금 아쉽다. 고통을 달래기 위해 마신 술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도록 만들기도 하고, 생각 없이 준 술이 한 민족을 멸망으로 이끌기도 했다. 유독 그 지역에서 그 술을 마셨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었을까? 아니다. 이러한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이해하고 그 속에 숨어 있는 교훈을 깨닫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진정한 이유이다.
이 책에서는 역사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22가지 술만을 선별해서 담았다.
우루크에 살았던 사람들은 보리를 발효시켜 만든 술인 맥주를 즐겨 마셨는데 우루크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는 수메르인도 조상들의 풍습을 이어받아 맥주를 좋아했다. 맥주를 모르는 사람은 무엇이 좋은 지 모른다라는 수메르속담을 보면 그들의 맥주사랑이 어느정도 수준이었는지 짐작할만하다.
금문고량주는 중화권에서 마오타이와 함께 명품으로 인정받는 고급술이다. 천연 샘물로 만들어 빛깔이 맑고 향긋한 냄새가 난다. 첫맛은 상큼하면서 부드럽고 뒷맛을 달콤하고 섬세하다. 다만 알코올 도수가 58도나 되는 독한 술이기 때문에 함부로 과음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금군고량주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금문고량주는 1958년 에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벌어진 국지전인 진먼 포격전 당시 진먼섬의 사업가였던 예화청이 만든 술이다. 금문고량주는 공황 상태에 빠진 대만군에게 배급되었는데, 일반 백주보다 훨씬 도수가 높은 술을 마셔 전쟁의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소주와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대중적인 술은 바로 막걸리다. 막걸리는 뿧옇고 진한 흰색 빛깔을 띈 술이라서 옛사람들은 막걸리를 탁주나 백주라고 불렀다. 고려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인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후기의 문신인 민지는 재상임에도 매우 청렴해서 집에 온 손님이 구구든 백주, 즉 막걸리와 오이만으로 술상을 대접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