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들의 음악 앤솔로지를 선물처럼 받아들 수 있는 단편집이다. 음악 전문 출판사인 '프란츠'에서 발간된 소설이라는 점도 눈길을 끌기에 한 몫을 했다.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어느 날의 일상에 음악은 엄청난 생기가 된다. 또 과거 어느 날에 묶여 있는 음악들은 음악을 재생시키는 것 만으로도 그 날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런 음악의 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소설집이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모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음악 자체가 소설의 전반에 걸쳐 큰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모든 소설이 그렇지는 않았다. 어떤 소설의 경우 끝까지 다 읽고 나서야 음악이라는 소재가 기반이 되는 이야기였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게 되기도 했다. 각 소설에 등장하는 음악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김애란 <안녕이라 그랬어>
Love Hurts / Kim Deal & Robert Pollard
김연수 <수면 위로>
Clair de lune / debussy
윤성희 <자장가>
불꽃놀이 / 오마이걸
무릎 / 아이유
스크류바 CM송
은희경 <웨더링>
The planets / Gustav Holst
편혜영 <초록스웨터>
노래방에서 녹음된 엄마의 카세트 테이프
다섯 편의 이야기 중에서도 윤성희 작가님의 <자장가>는 인상깊었다. 윤성희 작가님은 평소 잘 알고 있던 작가님이 아니었기 때문에 선입견이 없어 오히려 더 와닿았는 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는 전교생이 모두 짝짝이 양말을 신고 등교해야 하는 날에 그 짝짝이 양말을 신은 채로 교통사고를 당해 죽게 되는 어린 주인공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혼자 남겨진 엄마의 곁에서 영혼으로나마 맴도는데, 엄마가 크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아 주인공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서운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엄마가 친구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이는 모두 오해임을 깨닫는다. '나'를 보고 싶어서 꿈에서라도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잠만 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의 꿈에는 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아 어떻게 하면 등장할 수 있을 지를 알아내고자 고군분투한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안타까운 내용이지만 덤덤하게 이어나가는 이야기가 너무 좋았고, 엄마의 곁에서 맴도는 주인공 나의 영혼이 이 곳 저 곳을 유영하는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르게 힐링이 되기도 했다.
그 다음으로 인상깊었던 작품은 은희경 작가님의 <웨더링>이다. 이 소설에서는 기차의 마주보는 네 좌석에 앉은 등장인물들이 그 좌석의 가까움과는 상반되게도 음악에 관해 각기 매우 다른 깊이의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 음악은 헤어진 연인에 대한 미련의 한 조각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앞둔 형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또 어떤 이에게 음악은 그 자체로 인생이라고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인생과 큰 관련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결국 '행성'이라는 하나의 음악으로 묶이는 이 이야기가 나는 좋았다. 깊이와 방식을 넘어 음악과 연결되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던 것 같다.
"삶이 분절돼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시간에는 또 방향이 있어요. 그 위에 올라탄 채로 인연이 이어지고 풀어지면서 흘러가는 게 삶이고, 그러는 동안에 일어나는 짧은 멈춤과 읽힘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럼에도 떠나보내는 일. 그것이 소설 쓰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고요."
책의 끝 부분에는 다섯 작가님들의 인터뷰가 공통적으로 실려 있는데, 이 또한 책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작가님의 인터뷰를 읽고 소설을 다시 한 번 읽어보면 또 다른 감상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그 중 은희경 작가님의 말은 참 인상적이다. 삶은 어떤 특정한 시간에 머물러있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과, 그 흐름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럼에도 또 떠나보내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삶은 음악과 실제로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다. 음악은 한 시점에 멈춰있을 수 없으니까. 음악의 어떤 한 부분이 너무 좋았다고 해서 그 부분만 반복해서 듣지는 않는다. 한 곡을 반복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