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는 열 두명의 시인이 각자 매일 한 편의 글과, 매월 한 권의 책을 출간하여 일년을 채워가는 프로젝트다. 그 중에서도 이번 7월의 주자는 황인찬 시인이었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투명하고도 눅진한 기운이 느껴지는 7월은 여름 냄새가 가장 잘 느껴지는 시기다. 하루는 시로, 또 하루는 에세이로 7월을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정말로 세월이란 무상한 것이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음은 때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기만 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는 스스로 어디가 얼마나 변했는지도 모르는 채로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갈 따름이다. 옛 사람들이 그토록 세월에 대해 노래했던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지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황인찬 시인을 보고 왜인지 모를 다정한 느낌과 따듯한 문체에 한마디로 반해버렸는지도 모른다. 마침 그 때 시의적절 시리즈에서 황인찬 시인의 이름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이 시인 자신을 말하는 것일까? 제목과 같이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읊조리듯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는 점으로 보아 일상에 얼마나 많은 부분에 시가 녹아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시와 시인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솔직하고 거침없이 내면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점에서도 내심 놀랐던 것 같다. 부정적인 감정이라고는 없는 부드럽고 순한 사람으로 보았는데, "나를 추동하는 것은 언제나 수치심이었다."와 같은 글을 읽을 때면 그가 쓰는 시의 동력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했다.
"나를 추동하는 것은 언제나 수치심이었다. 부끄럽고 싶지 않아서, 부끄러운 것을 피하고 싶어서, 무엇인가를 선택하거나 포기했다. 선택하는 일보다는 포기하는 일이 더 많았다. 그게 더 쉬우니까. 다치지 않으니까. 욕망을 갖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을 피할 수 있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부끄럽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부끄럽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으면 부끄럽지 않았다. 미워하지 않으면 부끄럽지 않았다. 별로 자랑할 만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자기기만이야말로 가장 부끄러운 태도라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포기할수록 나는 더욱 부끄러운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스스로 절감하면서도 이러한 태도를 쉽사리 바꿀 수는 없었다."
가벼운 에세이로 생각하고 집어들었을 때와는 달리 이 에세이는 그리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황인찬 시인의 시에 대한 고민, 그리고 시인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생각보다 깊고 진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 어찌보면 너무 사소하다고도 볼 수 있는 작은 고민으로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시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이 제목이 된 문장 역시도 화장실에서 휴지가 굴러가는 바람에 화장실 안에 갖혀 나오지 못하는 사람의 고민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작은 고민과 고백이 문장이 되고 시가 되다니.
"시의적절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때에 어울리는 것, 당시의 사정이나 요구에 매우 알맞은 것을 뜻하는 말인데요. 이 말의 방점은 때가 아니라 저 사정과 요구 쪽에 찍어야만 합니다. 무엇인가를 요망하는 마음이 없다면 시의적절해질 수도 없으니까요.
우리가 무엇인가를 바랄 때에야 시의적절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바라기만 한다고 시의적절한 무엇인가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결국 '때'라는 것은 우리의 뜻이 아니라 천지든 신명이든 다른 그 무엇에 달린 일이겠지요. 그러나 천지신명과 공자님과 부처님이 모두 거들어주더라도 우리가 마음먹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시의적절할 수는 없습니다. (...)"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시의적절이라는 말의 개념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그 의미를 해석한다. 그리고 자신이 시를 쓰는 동력은 실상 '시의부적절'에 있으며,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시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또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시의적절한 것이라는 것이다. 조금은 의아하고 황당하지만 결국 맞는 말인 것 같다. 이런 식의 황인찬 시인의 글들이 너무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