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이름으로 초판된 이후 2018년 절판을 요청했던 책이다. 이후 중고서점에서 이 책이 거래됨을 알고 이 책을 찾는 독자가 있음에 두려움을 느꼈다는 최진영 작가님. 그리고 얼마 뒤 용기를 내 <원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소설의 제목인 원도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원도는 어릴 때부터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돌고래는 어째서 돌고래인지, 나는 어째서 나인지, 세상의 모든 것이 궁금했던 아이. 그 아이는 자라 질문을 두려워하는 어른이 되었다. 대금업을 담당하는 은행원으로 가정도 이루고 있었고 큰 평수의 아파트와 좋은 차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대금업을 담당했던 만큼 아무도 모르게 모금씩 돈을 횡령하여 이룬 것들이었다. 여유자금까지 만들어 조기퇴직을 하고 일을 쉴 수 없어 투자를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투자는 뜻대로 풀리지 않아 이래저래 틀어지게 된다. 아내와는 재정적인 문제로 서류상으로는 이혼을 하였으니 돈은 보존할 수 있었지만, 회사에서 횡령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자 아내와 딸은 원도를 두고 사라져버린다. 가족의 버림을 받고 혼자가 되어 탈세와 횡령 혐의로 쫓기는 신세가 된 원도는 간경화까지 얻은 몸으로 길거리를 전전하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여관방에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한순간 한꺼번에 닥치는 불행이란 없다. 징조가 있다. 시작이 있다. 보고도 본 줄 몰랐던, 겪고도 겪은 줄 몰랐던, 듣고도 들은 줄 몰랐던 유령같은 시작."
"원도는 자기를 뚫어버린 그것을 기억하기보다 몸에 난 구멍을 기억했다. 뭔가가 나를 뚫고 지나갔어. 그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확 지나가버렸는데 여기 구멍이 있어. 여기로 자꾸 아픈 바람이 불어와. 여기 있어야 할 게 없어. 내 몸에 이게, 이게 대체 뭐야 엄마. 원도가 운다."
"미래는 없다. 현재는 순간이다. 기댈 것은 차곡차곡 쌓인 기억 뿐이다. 죽거나 살아야 하는 데 이유가 있다면, 이유가 필요하다면, 과거를 뒤질 수밖에 없다."
"'왜'라는 질문을 잃어버리는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된다."
"나는 왜 사는가. 이것이 아니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이것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보잘 것 없는 '나'와 그런 내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내면의 고민 과정이 담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고민의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이라는 과정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즐겁고 행복하고 모든 것들이 완벽한 순간도 있겠지만 하루하루가 너무 버겁고 힘겨울 때도 있다. 스스로의 삶이 너무 극단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모두 비슷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도의 삶은 아프지만 아프지 않고, 안타깝지만 안타깝지 않다. 이 문장이 성립하는, 그러니까 정 반대의 생각이 교차함에도 그 두 가지의 생각이 전부 그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하다고 말하고 싶다.
'왜 사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원도의 질문은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거쳐서 종국에는 '그것을 묻는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병들고 지친 원도가 혼자가 되어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낼수록 자신의 존재에 대해 더 깊은 통찰을 하게 된다. 그럴수록 죽음보다는 삶으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에도 수 많은 원도들이 있다. 쉽게 찾을 수 있는 내 주변의 원도들. 그것은 어쩌면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
왜 사느냐와 왜 죽느냐의 두 가지 질문은 전혀 다르기도, 완전히 같기도 하다. 이런 질문을 꺼내기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삶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모른채로도 살았고, 살아있으므로, 사는 데까지는 살고싶은 원도다. 이번 소설의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최진영 작가님은 알베르 카뮈의 '인간은 과연 구원을 호소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문장을 인용했다. 그리고 그 질문도 그에 대한 대답까지도 마음 깊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