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의 소설 "낮은데로 임하소서"는 여느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는 이 소설이 일종의 간증 형태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주인공인 안요한 목사가 두 눈이 멀고 심지어 한 쪽 귀의 청력까지 상실하며 가족들과 헤어지게 되는 고난을 어떻게 극복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성전을 세워 자리를 잡는 데까지의 이야기를 안요한 목사의 1인칭 시점으로 상세히 담아내고 있다.
이청준 작가의 작품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당신들의 천국 이라는 걸출한 작품으로 소록도 나병 환자들의 수난과 아픔을 생생하게 그려 냈고, 서편제에서는 숨막힐 정도의 아름답고 세밀한 묘사로 남도 풍경을 그려냈던 작가가 이청준이다. 낮은데로 임하소서라는 작품은 언뜻 읽어보면 특정 종교인을 미화하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천천히 작품을 읽다보면 이청준 작가 특유의 꼼꼼하고 세밀한 묘사를 통해 안요한 목사가 걸어왔던 길을 소상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맹인이라는 위치는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 눈을 감고 길을 걸어가려 해보자. 아마 10걸음도 채 걷지 못하고 쓰러지거나 어딘가에 부딪혀 다치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안요한 목사는 원래 맹인이 아니었고 대학과 군부대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외국 유학까지 준비하던 찰나에 갑작스런 시력 상실을 겪게 된 것이다. 아마 최근이었다면 개선된 의료 기술을 통해 시력을 일정 부분 회복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시대에는 불행히도 안 목사의 시력을 되찾을 방법은 없었다.
안 목사도 한 동안은 자신의 시력 상실로 인해 방황하게 된다. 게다가 자신의 가족들까지 그를 떠나갔으니 그 심정이 오죽할까. 광활한 세상 한 가운데 나홀로 툭 떨어져 있는 느낌. 그러나 안요한 목사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타개해 나갈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어린 소년들과 친해지게 되고 어찌 보면 자신보다도 안쓰러운 처지에 있을 수 있는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하나씩 재기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안 목사는 미국 신학재단의 도움을 받아 신학대학에 입학해 학위를 받았지만 자신을 도왔던 아이들을 결코 잊지 않았다. 안 목사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잊지 않고 돕는 것이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듯 한다. 또한 자신과 같은 처지인 맹인들을 돕는 것도 그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는 맹인들과 아이들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자립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였으나 그 어떤 것도 그의 의지를 막을 순 없었다.
이 소설은 출간 이후 많은 인기를 누려 무려 30만부 이상 판매되었고, 심지어 영화로도 제작되기도 했다. 그럼 소설이 나온 이후 안요한 목사의 삶은 어땠을까? 혹시 초심과 달라지진 않았을까? 2010년 11월 한겨레 신문에 실린 그와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그는 여전히 맹인들을 위한 사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 하다. 2006년에는 돈을 모아 우리나라 최초의 시각장애인 양로원을 용인에 설립했다고 한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그가 자신의 시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그 후 받았었다는 것이다. 그도 사람인지라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기뻤다고 한다. 하지만 수술 동의 사인을 하려는 순간, 갑자가 눈을 떠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한다. 자신같은 사람이 눈을 뜨면 누가 상처받은 맹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냐는 것이다. 오히려 이제는 보고 안 보고는 큰 의미가 없다는 그의 말은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운영이나 선교에 도움이 될 말한 말씀이 있다면 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자신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삶의 의미를 회복시켜주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연말이 되면 자신들과 같은 맹인들에게 행사도 많고 이야깃거리도 많은 때이니 신문에서 좋은 분들 발굴해서 기사로 다뤄달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이 기사 이후로 자세한 소식은 없지만 몇몇 기사를 읽어보면 여전히 맹인들을 위한 사역에 헌신하고 있는 듯 한다. 현재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안요한 목사의 이러한 삶에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되었으며 앞으로도 그의 사역의 행보에 큰 진전이 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