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세상의 변화는 엄청나게 빠르고 혼란한 상황은 극복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대한민국의 현실은 참담하기까지 한 상황이다. 대학교때 열심히 공부하고 또 주변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체화했던 내용들, 그 근간은 '사실관계'에 기반한 명확한 분석과 이를 바탕으로 한 '가치판단'에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실관계'에 대한 믿음 자체가 무너져 내리게 되는 여러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똑같은 내용을 보더라도 관찰자의 '해석'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정부분 '각색'은 들어갈 수 있겠으나 작금의 현실은 서로 보고싶은 것만 보고 주장하고 싶은 내용만을 확대 재생산 하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기반한 몰상식적 행위들이 오히려 각광을 받고 있으니 정말 기가막힐 노릇이다.
구체적인 예는 생략하겠지만 최근까지 지면을 장식하고 있던 수많은 기사를 읽다보면 알 수 있는데, 특히 자신과 남을 가르고 패거리 문화를 양산하며, 이해득실에 기반한 행위가 당연한 것처럼 행동을 하는 정치인들과 이에 부합하는 이데올로그들을 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오며 이는 조소와 더불어 정치와 사회에 대한 불신감을 가중시키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환멸과 회의감 속에서 좌절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에 띄는 책이 나타났다. 바로 '팩트풀니스(Factfulness)', 사실충실성으로 번역한 이 단어가 주제이며 책의 제목이기도 한데 혼란스러운 지금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아니 최소한 생각의 실마리를 던져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책을 읽게 되었다.
머릿말부터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적절한 질문들이 많았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수많은 통계자료들을 통해서 그 질문과 답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덧붙였으며, 독자들에게 쉽지만 담담하게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핵심은 바로 '극적인 본능과 과도하고 극적인 세계관'을 극복하는 것에 있었다. 사회는 정말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으며 유아 생존률, 평균 기대수명, 삶의 질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개선된 것들이 관찰되고 있었다. 문제는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과 과장된 것들을 보여주는 언론을 통해 습득한 세계관이 아닐까?
우선 그 이유를 살펴보자. 평범하거나 개선된 것들을 나열하는 것들은 당연한 것으로만 받아들여져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또한 언론에서 이를 대서특필하더라도 사람들은 이를 대단한 뉴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테러나 사고, 전쟁, 폭력, 자연재해 등의 내용은 빈번하지는 않지만 극단적이기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쉽다. 이런 기사들이 확대 재생산 되다 보면 사람들은 사회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극단적인 뉴스들이 나온다는 것은 사회가 더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예전이라면 기사화 되지 못했던 수많은 일들이 세계화와 매체의 발전 등으로 뉴스화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책에도 나오지만 1960년대에 있었던 중국의 기근과 같은 것들은 당시에도 아니 지금까지도 그 구체적인 규모를 확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이보다 더 심각하지 않은 것들도 훨씬 더 빨리 쉽게 퍼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고 또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해볼 수가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우리가 흔히 가지는 여러가지 오류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간극 본능', 부정 본능' 등 각 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내용들을 읽다 보면 빨리 '사실충실성'에 기반하여 지금까지도 극복하지 못한 이런 시대착오적인 선입견을 극복해야 한다는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다.
저자가 제공하고 있는 극복을 위한 경험 법칙 또한 매우 단순하다.
'간극 본능'에 대처하는 경험 법칙은 '다수를 보라'이며, '부정 본능'에 대한 법칙은 '나쁜 소식을 예상하라'이다. 정말 쉬우면서도 세상에 적용하는데 필요한 법칙이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내가 처음에 가지고 있던 생각 자체는 언론에 의해 자극된 '과도하고 극적인 세계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전보다 대한민국은 발전하였으며, 코로나 등의 대응을 본다면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성공적인 사례들도 있었다. 다만 이런 성공에 안주하거나 진실을 가리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개인의 능력에 좌우되는 것이 아닌 시스템에 의하여 운영되는 발전된 사회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