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 소설을 창작한 소설가 김진명의 장편 역사소설로 17년에 걸친 자료의 검토와 해석을 통해 나온 작품이다. 저자가 작가의 말을 통해 우리에게 전한바와 같이 한국인 이라면 누구나 고구려라는 세 음절의 단어를 떠올릴 때 가슴 두근거림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는 실상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미천왕 때의 고구려 도읍은 평양성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평양이 어디인지는 누구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하남지방설, 베이징 바로 아래 존재했다는 설, 그리고 일본인들이 왜곡 주장한 한반도 평양설 등. 그리고 슬프게도 일본인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한반도 안에 국한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한반도 평양에 대하여 지금까지도 우리는 배우고 있다. 도읍의 위치가 이렇게 뒤틀어져 있는데 다른 대소사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고구려는 우리의 환상을 자극하지만 막상 찾으려면 어느 곳에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고구려와 관련된 콘텐츠를 접하다 보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역사에 대하여 얼마나 무지하고 무관심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특히 4~50대 또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독자라면 식민사관에 너무나 충실한 역사교육을 통해 한민족의 고대왕국들이 한반도 내에 위치한다고 배우고, 그나마 고구려 전성시대에 만주일부까지 영토를 확장했다는 피상적인 향수 정도를 가지게 되지만, 김진명 작가의 소설 '고구려' 시리즈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무대를 한반도 밖으로 무한히 확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인들이 고구려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애틋한 마음은 고구려의 역사와 그들의 영토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세계지도를 볼 때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으로 눈길이 가게 되고, 그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안타까운 한숨을 쏟아내개 된다. 그리고 자연스레 고구려가 망하지 않고, 즉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고구려는 식민사관으로 점철된 국사교육에 묘사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대국이었다. 건국이후 수백여년 동안 백제, 신라가 아닌 중국과 북방의 수많은 왕조, 민족들과 부대끼며 그들의 영토를 일구어 갔던 것이다. 그 결과로 동아시아 북방의 맹주로 군림했고, 그 과정에서 힘이 강할 때는 황하를 넘나드는 세력권을 형성하였다. 고구려는 드넓은 동아시아 대륙을 마음껏 달리며 그 위용을 만방에 떨치던 나라였다. 漢에서 唐에 이르기까지 수십개나 되는 대륙 왕조가 탄생하고 몰락하는 동안에도, 고구려는 흔들림 없이 북방의 맏형이자 동이족의 버팀목으로 대륙의 중심에 우뚝 서있었다. 이처럼 고구려는 끊임없이 대륙의 국가들과 패권을 다투며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탁월한 외교정책과 타고난 용맹함으로 수많은 시련에 의연히 대처하며대륙의 북방을 지켜낸 대제국이었다. 21세기도 어느덧 20여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 정확하게 기록되지도 않은 오래전의 역사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현존하는 자료를 최대한 살펴보고 이들을 연결하여 빠진 고리에 합리적 창작을 덧붙인 작자의 시도는 과도한 '국뽕'도 비굴한 '식민사관'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고,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역사에 대한 인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미래를 합리적으로 예측하고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일본의 식민사관 뿐만 아니라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도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요하문명을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고 있다. 이제껏 동이족의 역사로 버려두었던 요하문명에서 황하문명보다 근 천오백년이나 앞선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자 서둘러 동이의 조상 치우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둔갑시키고, 고조선과 고구려는 물론 지금의 우리 한국인까지 자신들의 후손으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맹렬히 진행중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작가와 출판사들은 앞다퉈 삼국지와 초한지와 수호지를 재번역하고 출판하고 있다. 반면 우리 역사인 고구려를 제대로 알 수 있는 문학은 어느곳에도 없고 누구도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사회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숱한 장수들의 이름은 다 외우면서도 정작 미천왕이 누구이고 소수림왕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청소년이 상당수 인것이 현현실이다. 중국의 고전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 오랜 역사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세계관을 넓히는 것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독서의 다양성은 자신의 뿌리를 확고히 인식하고 난 다음 순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삼국지를 읽기 전에 이 소설 '고구려'를 먼저 읽으라는 저자의 외침이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가 자주 추억하는 광개토대왕의 정식 묘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라고 한다. 아마 다른 모든 왕들도 이러한 묘호를 추존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해지는 기록이 없으니, 많은 왕들이 능의 위치를 묘호로 쓰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복원한 방법은 없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왕들의 호칭이 상당부분 생략되고 소실된 일부 파편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을 신의 선물이라 생각한 부시맨처럼 살아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지금의 일들도 정확히 기록으로 남겨 후대 사람들이 귀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록은 남기는 자의 몫이고 기록을 남기는 자가 승자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