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얇은 책이지만 읽어 내는 데에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다. 토마스 레온치니와 지그문트 바우만의 대담집.
그들은 피부의 변형-문신, 성형, 힙스터 공격성의 변화-집단 따돌림 섹스와 사랑의 변화-감정적인 전자 상거래 시대에 쇠퇴하는 금기들이라는 주제로 대화한다. N86세대부터 90년대 생, MZ세대에 이르기까지 연령대를 기준으로 구분 짓는 말은 항상 있었다. 이는 어찌 보면 너와 나를 구분 짓고,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원래 저래'라며 갈등을 회피하고 심화시키는 전초가 아닐까. 나이는 다르지만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행인으로서 피부, 공격성, 사랑에 대한 다른 생각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보지 말자라는 것이 지그문트 바우만의 골자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나부터도 그렇다. '이렇게 하면 더 나을 텐데'라는 생각에 입이 근질근질하다. '라떼는' 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 소비사회로의 철저한 전환, 웹이라는 새로운 공간 등장으로 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환경과 문화가 다르니만큼 그 속에서 적응해 나가는 속도와 반응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사회는 파괴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찬찬히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책이다. 매우 얇은 책이나 인덱스가 빽빽하게 붙었다.
(헛된 망상이 분명한) 완전함에 대한 열망은 문명이 시작할 때부터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자신을 드러내어 보여 주는 무대로서 자신의 몸보다 훌륭한 것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적 감수성에는 주관과 객관이라는 두 가지 측면 말고도 문화적이고 지단적인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근대를 가장 잘 대변하는 유행으로서의 미적 현상이 자주 언급되는데 이 유행은 '엔트로포포이에틱(antropopoietic)한, 즉 자신의 '인간됨'을 의식적으로 구축하는 인간존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간존재의 출현 이후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항상 염려했으며 대부분 지배적인 관습에 따라서 자신의 몸에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아침 몸을 씻는 행위도 인간이 자신의 몸과 갖는 관계의 표현이고 '만물의 흐름'이라는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는 위생이 과학 발전에 따른 문제만은 아니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토마스 레온치니, 이유출판, 액체 세대 21쪽
이런 상황에서 과연 문신이 과거에 정치적 응집력이나 신념을 대변하는 기호로 사용된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오늘날 이 모든 것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문신의 정치적 "동기"가 우리의 유동하는 근대 속으로 모두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얼마나 많은 폭력, 그것도 우발적이며 아무런 이유도 동기도 없는 폭력적 광경에 노출되고 있는지 알게 될 겁니다. 악행은 정말 일상적인 것이 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가 악의 존재와 그 징후에 무감각해졌거나 아니면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악행을 저지르는 데에는 더 이상 동기가 필요 없어졌습니다. 집단 따돌림을 포함해서 악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은밀하게 움직이던 단계에서 이제는 점점 더 증가하는 "방관자들"을 위해 여가와 오락의 영역으로 이미 상당 부분 이동하지 않았을까요?
<액체세대> 지그문트 바우만의 마지막 대담집 중, 바우만의 말, 60쪽
◆어빙 고프먼(Erviing Goffman) "일상생활에서의 자기표현"을 몸에 새기는 것. 보들레르, 영원을 찰나의 순간에 포착하려는 시도.
근대 이전에는 '주어진 것'으로 여겨지던 신체가 근대 이후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바뀌었다는 점. 그 과제는 사회가 제공한 모델과 재료를 이용하여 "유행"이라는 이름 아래 "창조적 재생산"이라는 복잡한 작업을 거쳐 개인에 의해 수행되고 있음.
영어로 '무엇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이라는 의미의 '힙(hip)'에 '~하는 사람'이라는 접미사 '-ster'가 붙어서 만들어진 단어. 1940년대 미국 주류 문화로부터 분리되어 대중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패션과 음악, 라이프 스타일을 표방하던 젊은이들 또는 그러한 문화를 말함. 오늘날 힙스터는 공동체를 형성하기보다는 패션과 유행에 집중하며 엘리트주의적인 생활 방식을 선택한다는 특징이 있다. 빛바랜 셔츠, 뿔테 안경, 페도라, 덥수룩한 수염 등이 외적인 특징이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등 친환경주의적인 취향을 보이는 한편 인디 음악, 독립 영화 같은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오락에 열광하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