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 - 수바드라 다스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이달의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는 점에 끌려 신청하게 되었다.
이 책에 대한 후기는 작가의 서문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문명과 권력이 만났을 때
유명한 농담으로 이 책을 시작해 보자. 어느 저널리스트가 마하트마 간디에게 '서양 문명'에 관한 생각을 묻자, 이 현인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봅니다." 간디를 주인공으로 한 이 농담은 1967년쯤 유행하기 시작했다. 간디가 사망한 지 20년쯤 지난 뒤인데, 1920년대부터 "라이프" 같은 잡지들의 오락거리 코너에 돌아다니던 오래된 농담을 손봐서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간디가 정말로 이 말을 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말의 주인공이 간디라는 점이 주목해야 할 포인트다. 1920년대에 돌던 농담은 다음과 같다.
"'서양 문명'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봅니다. 누군가 실해에 옮겨봐야겠죠"
사실 썩 재밌는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똑같은 말을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시민권 운동 지도자의 입에 담아보니, 갑자기 훨씬 강력한 힘이 생긴다. 간디라는 지도자를 주인공으로 삼으니 수 세기에 걸친 역사, 권력, 위선을 비판하는 내용을 단 한 문장으로 아우르게 된다.
짚고 넘어가자면,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는 영국인들만큼이나 서구화되었고, 더 나아가서는 '문명화'되었다. 젊은 시절 그는 각 잡힌 양복을 입고,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런던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그는 식민지를 문명화한다는 임무에 딱 맞는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간디는 서양식 교육과 통치 시스템의 산물이었고, 이 시스템 덕택에 그는 영국 국민으러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이상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간디가 교육을 마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살면서 법조계 일을 하게 되자, 빛은 사그라들고 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런던에서 받은 번듯한 교육도, 고상한 양복도, 그가 남아프르카에 발을 들였던 그순간부터 마주했던 인종차별을 전혀 막아주지 못했다.
그가 위대한 영혼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로 거듭난 극적인 이야기를 살펴보면, 어느 백인 남성이 인도 사람과 함께 여행할 수 없다며 불평을 했다는 이유로 기차 일등칸에서 거칠게 쫓겨난 순간을 설명하고 있다. 아무리 그 인도 사림이 값을 치렀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바로 이 순간 간디는 식민지의 통치자들이 '문명적인 이상'에 걸맞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간디는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던 인도로 돌아왔을 때 정의, 평등, 자유, 민주주의, 자치를 신념으로 삼지만 어디까지나 백인 시민에게만 이런 기준을 적용하는 제국의 위선을 드러냈다. 간디는 이러한 잔혹함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추종자들과 비폭력 저항 운동에 참여했다. 그리고 많은 추종자가 그 대가로 머리가 깨졌다. 간디는 여성과 달리트(일반적으로 '불가촉천민'이라는 경멸적인 표현으로 부른다. 힌두교 카스트 제도의 밑바닥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이다)에게도 평등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그는 문명적인 사회에서는 가능하다고 배웠던 모든 신념에 관한 진실을 밝히는 데에 생을 바쳤으며, 진정한 평등과 자유를 위해 목소리를 냈다. 간디의 삶은 서양 문명이 우리의 생각만큼 좋지 않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우리는 문명화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저마다 생각을 품고 있다. 내게 문명이란 새로운 곳에 갔을 때 접근이 용이한 무료 공중 화장실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을 여행하다 보면 따스한 환영을 완전하게 보장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 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사람들, 내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사람들이 내 욕구와 또 다른 낯선 사람들의 욕구를 미리 생각하고 배려해줄 때면 나는 인류애를 확인하고는 안심한다.
물론 문명에 관해 훨씬 더 잘 정립된 개념들도 있다. 문명화되었다는 말은 진보와 발전이라는 개념을 포함한다. 우리는 온갖 복잡한 기반시설과 세련됨을 갖춘 도시는 시골이나 야생보다 더 발전되고 문명화된 곳이라는 말을 듣고는 한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