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블러드 선샤인 신미양요를 읽기 전부터, 신미양요가 언제 일어났는지 대략은 알고 있었지만, 어떠한 배경으로 일어났는지는 알지 못했다. 약 수년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미스터선샤인을 통해서 신미양요가 조선시대 후반에 일어난 큰 사건으로만 알았으니 정확한 시대적 배경은 몰랐다. 신미양요는 1871년 발생한 사건이다. 1866년 조선 평양까지 배를 타고와서 통상을 요구한 제너럴 셔먼호는 민간인을 살해하고 대표를 쏘는 횡포를 부리다가 평안 감사 박규수 휘하의 조선군에 의해서 불태워지고 선원들은 살해된다. 미국은 이 사건에 대한 항의와 조선의 강제 개항을 목적으로 강화도를 침공하게 된다. 19세기 일본열도를 지배하던 에도 막부를 굴복시키고 강제 개항시킨 미국은 조선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개항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일본 개항 당시에는 미국은 거대한 함선을 가져와서 무력시위를 하였고, 배 구경을 시켜주고 나니 일본이 알아서 개항을 한 선례를 믿고 있다. 1854년 선공적으로 일미통상조약을 체결한 미국은 약 1,200명의 병사를 이끌고 조선 강화도 쪽에 나타났다. 미국은 여러차례 접촉을 통해 조선의 개항을 지속적으로 요청하였으나, 조선은 거부의사를 확실하게 밝혔다. 조선은 5.31일 문정관을 파견해 미국의 접근 의도를 추궁하였지만, 미군은 딴청으로 일관하며 고위 관료를 만나게 해 달라는 요구만을 반복한다. 조선 측은 협상을 하자면서 군대를 끌고 온 것은 무슨 도리이며 개항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고 일축하였다. 미국은 6월 10일 강화도에 상륙하여 덕진진과 초지진을 점령하면서 실력행사를 하였다. 이에 조선은 1,000명의 수비대를 이끌고 맞서 싸웠으나, 무기의 양이나 질이 미군에 비해서 현격히 낙후되어 있었고, 미군은 이미 남북전쟁과 인디언전쟁 등을 통해 잘 훈련된 군사였기 때문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미군은 3명의 사망자만을 기록했지만, 조선군은 200명이 넘게 사망하였다. 내가 다른 매체를 통해 들은 정보로는 조선군이 정말 죽기살기로 용맹스럽게 싸웠기 때문에 허술한 무기를 들고 싸우는 조선군에 대해서 미군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조선군은 미국이 왜구처럼 조선인의 평화를 해치고 조선을 침탈하려는 외세로 판단하여 이렇게 용맹스럽게 싸우지 않았나 생각한다. 조선군이 대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정부는 미국에 대한 적대적 자세를 바꾸지 않았고, 미군은 1,200명의 군사로 조선을 완전히 점령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여 일단 철수하였다. 미국은 무력시위만으로 개항에 성공했던 일본의 사례와는 정반대로 조선민중의 강력한 저항의 의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이다. 신미양요는 조선의 대패로 끝났지만, 조선의 당시 집권세력은 정신승리를 주장한다. 미군의 침략을 조선의 힘으로 몰아냈다고 믿고 더욱 더 쇄국정책을 강화한다.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고 외세와의 전쟁을 대비하게 된다. 미국은 가지고 갔던 군사력이 충분치 못했다고 판단했고, 풍토병에 대한 우려, 식수, 그리고 군수물자의 부족을 걱정하여 철수했지만, 조선은 어리석은 정신승리에 몰입하여 개속해서 개항을 미루고 내부적인 단속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미국이 물러가긴 했지만, 조선군 전멸이라는 결과에 대하여 적지 않은 충격을 받게 된다. 박규수를 비롯한 개화파는 통상 거부 정책의 한계성을 재인식했고, 위정척사파는 위정척사파대로 대원군의 개혁 정치 및 남인 등용으로는 양이의 군대를 막아낼 수 없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결국 단기적으로 신미양요는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힘을 실어주었으나, 내적으로 쌓이는 반발과 불안감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신미양요가 발생한지 2년후에 대원군이 물러나고 공종이 친정을 하게된다. 고종은 개국, 개화파에 힘을 실어주고 불과 4년 뒤에 일본이 미국을 따라 운요호를 보내자 강화도 수비병력은 똑같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일본에 의해서 개항을 받아드리게 된다. 일본의 개항은 일본 내부적인 철저한 반성과 노력 위에 외세의 자극이 최종 발화점이 되었다면, 조선의 개항은 수구세력의 적극적인 저항과 외세의 무력에 의해 충돌되면서 발생되었다는 점이 큰 차이로 느껴진다. 만약 우리나라가 신미양요 때 먼저 개항을 하고 나서 일본과의 개항을 이어 나갔다면 조선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조선이 먼저 손을 내밀어 이뤄진 개항이 아니기 때문에 조선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었다. 이에 대한 주책임은 다수의 어리석은 민중이 아니라 소수의 자가당착에 빠진 집권세력이 책임을 져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에 대한 고통은 대다수의 민중이 져야 함이 너무나 가슴아프고 안타깝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일들이 현재에도 그대로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괴로움을 느낀다. 우리 국민들은 사사로운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 더 크고 중요한 가치들을 외면하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끊임없이 반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나라는 수차례 좋은 기회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지금 우리사회의 곳곳에서도 자신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서 철저히 외부의 자극이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한다. 최근 문제가 되고있는 축구협회나 대한체육회도 마찬가지다. 외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어떠한 결과가 있는지 신미양요가 말해준다. 제때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뼈야픈 대가를 계속 치러야 한다. 나는 블러드선샤인 신미양요가 여러 독자들에 의해 많이 읽혀서 우리나라가 바른 길로 나아가길 진심으로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