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식물의 책을 읽고
이소영은 식물 세밀화를 그리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 직업은 어떤 식물을 그릴지 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것이 정해지고 나면 이들이 사는 곳은 어디인지, 어덯게 이른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이들은 어쩌다 숲에서 도시로 오게 되었는지와 같은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 그렇게 이 식물에 관해 좀 더 알게 된 다음에 직접 식물이 사는 곳으로 찾아가서 형태를 반복해서 관찰하고 그림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이소영은 이렇게 작업된 식물 세밀화를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펼쳐내었다. 국립수목원·농촌진흥청 등 국내외 연구기관과 협업해 식물학 그림을 그리며 식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해온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이 소나무, 은행나무, 개나리, 몬스테라, 딸기 등 늘 가까이에 있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도시식물들에 관한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를 세밀화와 함께 담아낸 것이 식물의 책이다.
가로수로 심긴 은행나무나 왕벚나무, 정원수로 심긴 곰솔이나 주목, 카페 천장에 매달린 틸란드시아, 식탁 위에 놓인 사과나 포도……. 숲에서, 더 멀리는 사막에서 살던 식물들이 어쩌다 우리가 사는 도시로 오게 되었을까. 저자는 각 식물의 이름과 형태를 기억하고, 관심을 갖고 자주 들여다보는 일, 이는 식물을 숲에서 도시로 불러 이용하는 우리의 책임과 의무라고 이야기하며 식물의 형태, 이름, 자생지 등 기본적인 정보만 정확하게 알고 있어도 더 오래도록 식물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반려식물과 플랜테리어가 유행하고 미세먼지와 새집증후군 등으로 공기 정화용 식물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집에서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식물을 들일 때 가장 많이들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식물을 키우고는 싶은데, 자꾸 죽더라고요. 어떤 식물이 잘 죽지 않나요?” 저자는 식물을 키울 때 재배 방법을 잘 모르겠다 싶으면 우선 그 식물이 자생하던 원산지의 환경을 떠올려보라고 권한다. 예컨대 리톱스나 선인장 등 다육식물을 키울 때는 자생지인 사막처럼 건조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아주 습한 여름에는 공기 중의 물만으로도 살 수 있도록 물을 주는 횟수를 제한하는 게 좋다. 로즈마리나 라벤더 같은 허브식물의 경우에도 햇빛이 강하고 물이 풍부한 이탈리아 자생지의 환경을 떠올려보면, 물도 자주 주고 햇볕도 흠뻑 쫴주는 게 좋다고 예상해볼 수 있다.
식물의 원산지에 관한 정보를 바로 얻기 어렵다면, 우선 식물의 생김새에 주목하는 것도 방법이다. 저자는 식물을 자주 관찰하는 것이야말로 식물을 재배할 때 가장 필요한 기본자세라고 강조한다. 아이나 동물은 결핍을 말이나 움직임을 통해 드러내곤 하지만, 식물은 움직일 수 없다 보니 결핍을 형태로 드러낸다. 식물의 잎이 쳐졌다거나 색이 변했다거나 하는 작은 변이를 관찰함으로써 식물의 현재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잎의 모양에도 이미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식물의 잎은 광합성과 연관이 깊은데 예컨대 식물의 잎이 크다면, 그 식물은 빛을 많이 받기 위해 그런 형태로 진화했을 테니, 빛이 많이 드는 곳에서 기르는 게 좋을 것이다. 요즘 실내에서 잘 키우는 틸란드시아는 어떨까? 틸란드시아를 자세히 살펴보면 잎 안쪽에 꺼끌꺼끌한 질감의 기공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틸란드시아는 바로 이 기공을 통해 수분이나 양분을 흡수하는데, 그렇기에 물을 줄 때는 잎 전체를 물에 담그거나 물을 뿌려주는 게 좋다.
사실 식물의 원산지는 그 학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경우도 많다. 학명은 전 세계에서 통용하는 식물의 이름으로 식물의 분류학적, 역사적, 형태적 특징 등의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에, 식물을 학명으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식물과의 거리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식물문화가 발전한 유럽에서는 품종 기록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식물원이나 원예협회 측에서 직접 식물세밀화가를 고용해 그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와인의 인기로 포도 재배 산업이 발달한 프랑스에는 포도 관련 기록물이 풍부한 편인데, 특히 1700년대 후반부터 활동한 피에르 조셉 르두테Pierre-Joseph Redout?가 포도 세밀화를 많이 남겼다. 워낙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해서 이소영 작가가 프랑스에서 만난 이들에게 직업을 소개하면 “아하 르두테와 같은 일을 하는군요!” 하며 알은체를 할 정도라고 한다.
각 식물의 이름과 형태를 기억하고, 관심을 갖고 자주 들여다보는 일, 이는 식물을 숲에서 도시로 불러 이용하는 우리의 책임과 의무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