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하염없이 불꽃을 바라보며 멍 떄리기 좋다며 캠핑 장소에서 ‘불명 세트’를 끼워팔기도 한다. 인류가 불을 다룰 줄 앎으로써 음식을 익혀 먹기 시작하고, 난방도 가능해졌다. 인간을 이롭게 해주는 불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재산적, 신체적 피해가 극심하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벌니다. ‘화마’라는 말이 나온 이유 아닐까.
불을 질러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방화죄는 무서운 범죄다. 조기에 진화되지 않으면 재산적, 신체적 피해가 계속해서 증대된다. 불이 나서 목숨을 잃는 경우, 타 죽기보다는 질식해서 죽는 경우가 먼저라고 한다. 화상은 큰 상흔을 남긴다. 완전한 회복이 안 될 정도로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미시마 유키오라는 일본 작가의 [금각사]라는 소설을 읽었다. 실제 교토에 금각사라는 절이 있다. 1950년도 7월에 금각사 도제인 하야시 라는 승려가 금각사에 불을 지른 다음 자살 기도에 실패하여 징역 7년을 선고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판에서는 방화 및 자살 동기로 “자기혐오, 미에 대한 질투, 아름다운 금각과 함께 죽고 싶었던 점, 사회에 대한 반감, 방화에 대한 사회의 비판을 듣고 싶었다는 호기심”이 제시되었다.
<금각사>는 일본 근현대 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저자는 1963년부터 1965년까지 연달아 세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다고 한다. 미시마유키오는 이 책으로 유명ㅇ세를 얻지만 나중에 극우에 빠지고 결국에는 희한한 방법으로 죽는다. 자위대에서 쿠테타를 일으키다가 할복자살을 한다.
<금각사>의 주인공인 미조구치는 시골 절간의 아들로 말더듬 증세와 허약한 체질 등으로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소년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금각사에 있다가 금각사에 매료되기 시작하고, 압저지 유언대로 금각사의 도제가 된다. 주지스님의 배려로 오타니 대학에 진학하나 안짱다리인 가시와기를 사귀면서 학업을 소홀히 하게 되고, 가시와기의 도움으로 두 번 영성과 관계를 하려고 하는 순간마다 금각사의 환상이 출현하여 실현하지 못한다. 홀로 남은 어머니는 주인공에게 금각사의 주지 스님이 되기를 격력하나 주지로부터 후계자로 삼을 뜻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절에서 도망나가 바다를 보면서 ‘금각을 불태워야 한다’고 결심한다. 다시 금각사로 돌아가 생활을 하던 중 한국 전쟁 발발로, 세계의 몰락을 확신하고 방화를 준비하고, 화재 경보기가 고장난 틈을 타 금각사에 불을 지른다. 방화 후 뒷산으로 도망가 당초 준비했던 자살을 포기하고 담배를 피우며 ‘살아야지’라고 생각한다.
절대적인 미에 대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어렵다. 말더듬증에 허약 체질로 아웃사이더인 주인공이 대학까지 진학하고 스스로 동경해 왔던 절에 불을 지른다는 내용이 선뜻 이해가 안 갔다. 아름답고 완벽한 금각사와 스스로의 모습(말더듬증, 못생긴 외무, 허약 체질 등)의 대비를 통해 ‘미’를 더 극대화 하려거나, 미를 숭배하다가 결국 미를 포섭할 수 없게 되자 미를 극대화 하려거나, 미를 숭배하다가 결국 미를 포섭할 수 없게 되자 미를 없애버리기로 결심을 한 것인가. 금각사의 방화를 묘사하는 부분은 마치 방화를 저질러본 사람이 씀직한 것처럼 생생하였다. 숨을 죽이고 읽어내려갔다.
특히 미조구치는 금각사의 주지 스님이 타락하여 작부와 함께 길을 걷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 작부의 사진을 구하여 주지가 구독하는 신문에 껴서 전달하기도 하는 등 대범한 행동까지 한다.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독백 형식의 소설이라 상대방인 노주지의 심리를 알 수 없는 채로 주인공의 걱정과 고민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어 긴장감이 느껴진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 마을에 살던 아름다운 우이코와 그녀의 비극적 죽음 등이 초반부에 나오고, 계속해서 성관계 등 성적 내용들이 나올 때마다 우이코가 소환된다. 주인공이 성관계 시도를 하면 금각사의 환상을 보면서 실패하는데, 성적 요소와 미적인 요소를 연결시키려는 것 같다.
소설은 제대로 이해를 못 했다. 나중에 교토에 가게 되면 금각사에 가고 싶다. 방화 이후 재건을 하여 예전만큼 은은한 아름다움은 없다고 한다. 소설을 읽었으니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