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세계사의 결정적인 장면들을 작가 특유의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재해석한 책으로 저자는 “20세기는 태양 아래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은 역사의 시간을 체감하기에 좋은 100년이었다. 그토록 많은 것이 사라지고 생겨난 100년은 없었다”고 책에서 서술한다. 희망과 변혁, 새로운 사상과 발명, 갈등과 전쟁, 20세기 역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토록 다변적이고 복잡했던 시기가 또 있을까 싶다. 드레퓌스 사건부터 독일 통일과 소련 해체까지 모든 사건이 너무나 극적이었고 경쟁하듯 편을 가르던 시기였다. 인간 이성의 힘을 믿지만 생물학적 본능의 한계로 스스로 절멸의 가능성을 확인했던 시기였다. 때문에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20세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새로운 역사적 과업을 부여받았지만, 이로 인해 야기된 내전, 기후위기 그리고 핵전쟁 등의 문제 앞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며 낙관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모든 것은 지나가나, 끝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역사라는 이름으로 아로새겨진 그 모든 장면들에 숙연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 책은 사라예보 사건, 러시아 혁명, 대공황, 팔레스타인, 베트남 전쟁 등 20세기에 일어난 이 굵직한 사건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촉발되었으며 각 사건에 담긴 쟁점과 의미는 무엇인지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본다. 언뜻 보면 개별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듯 하지만, 각 사건들이 20세기 역사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거시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20세기 세계사의 포문을 연 것은 바로 드레퓌스 사건이다. 저자는 군부의 전횡과 사법제도의 결함을 드러낸 20세기 역사상 아주 중요한 장면 중의 하나로 이 사건을 꼽는다. 저자는 인간이 어리석고 때로 기괴하지만 지적 재능과 선한 본성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한 사건이자. 민주주의 시대의 도래를 알린 사건이며 지식인과 언론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린 사건이라 평가한다. 책은 드레퓌스 사건을 시작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계기가 된 사라예보 사건, 인류 역사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켜 20세기 세계사의 경로를 바꾼 레닌,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제도 사이에 깊은 골을 만들어냄으로써 파시즘을 양산한 대공황,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한 홍군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게 된 대장정 등과 같은 거대한 사건들을 간결하면서도 읽기 쉽게 설명한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복잡하고 접근하기 까다로운 팔레스타인 문제를 비롯해 우리나라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 베트남 전쟁의 그림자를 객관적으로 조명한 점이 인상깊다. 또한 말콤엑스를 통해 뿌리 깊은 인종갈등 문제와 미래를 함께 조망하고 핵무기편을 통해서는 냉전으로부터 비롯된 과학기술 발전의 명암을 진단함으로써 그에 따르는 책임의식을 촉구하고 불확실한 미래의 해법을 찾아보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스라엘 건국은 곧 팔레스타인에 대한 침략이었다. 유럽 유대인은 2천년 동안 혹독한 차별과 박해를 받았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본 유럽과 미국의 기독교인과 정부가 시오니즘 운동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인 사정도 이해할 만하다. 자신의 국가를 세워 안전한 삶을 도모하려 한 유대민족의 동기도 정당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고 거기에 살던 사람들을 내쫓을 권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세한 무기와 운송수단을 먼저 확보한 유럽인은 지구의 모든 대륙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피부색과 신체특성을 기준으로 인종을 구분하고 인종집단 사이에 타고난 능력의 우열이 있다는 관념을 형성했다. 신을 들먹이거나 과학을 빙자해 외모가 다른 인종집단을 죽이고 착취하고 차별했다. 그러나 인종은 실체가 없는 가상의 관념이다. 과학자들은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모든 인간은 유전자가 99.9%이상 동일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두차례의 세계대전, 대공황, 홀로코스트, 사회주의 혁명 등 20세기의 대사건들은 모두 지나갔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소말리아의 내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무한한 변화와 희망을 예고하지만 핵과 기후위기 같은 종말의 두려움까지는 지워내지 못하고 있다. 20세기 대사건들이 그러했듯 필연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는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역사를 단순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자세로 바라봐야 하고, 왜 경각심을 잃지 말아야 하는지를 직시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