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늦깍이 만학도인 저자가 그 동안 여러기관에서 오랫동안 강의해온 "그리스신화로 세상읽기"라는 주제의 강의를 정리하여 펴낸 것으로, 우리 삶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에로스, 즉 성적 본능에 초점을 맞추어 그리스신화에 나타난 에로스적 요소와 무의식적 심리를 인문학적으로 해석하여 보여주고 있다.
어려서부터 재미있게 읽었던 그리스/로마신화의 기억도 거의 가물가물해지고 있던 즈음에 독서통신연수를 통해 이 책을 발견하고 모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기억이 새롭지만 막상 서평을 쓸려고 하니 뭐를 써야 할지 난감한 마음만 앞선다. 책을 읽으렴 읽을수록 어렸을 때 가졌던 그리시신화의 성스럽고 신비로운 느낌은 사라지고,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웃들의 수준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십상인 난봉꾼이나 자유분방한 행실로 뭇 여인들의 수다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웃 동네 아줌마같은 신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최고의 신인 제우스는 천하의 바람둥이로 무수한 스캔들을 만들어내고, 가정을 지키는 정숙한 여신 헤라는 남편 제우스의 상대 여자들을 질투하여 유치하기까지 한 복수극을 멈추진 않는다. 그런가 하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남자라면 사족을 못쓰고 마음에 드는대로 유혹하기 일쑤고,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여신들이 제각각 황금사과의 주인이라며 다추는 등 그야말로 막장의 끝을 보여주는 드라마의 한 일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내용을 접하면서 그간의 섭인견이 깨지는 충격도 인상적이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신화가 가지는 인간의 여러 가지 삶의 원형을 잘 보여준다는 데서 저자와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나에 대해 위안을 삼기도 한다.
물론 위의 내용이 그리스신화의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장쾌한 전쟁이야기, 재치 넘치는 삶의 이야기에 거센 물결과 유혹을 물리치며 원하는 바를 이루는 리더십과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를 물리치는 모험등 훨씬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은 그 많은 그리스신화의 테마중에서 에로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그리스신화의 처음이자 끝, 즉 알파와 오메가로 에로스를 설정하고 그리스신화속 많은 신들의 이야기에서 에로스적 요소와 심리를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더불어 세계의 다양한 신화와 성경의 일화 등을 추가하면서 에로스가 우리 삶의 지엽적인 요소가 아니라 인류의 삶 구석구석에 보편적으로 영향을 끼쳐온 중요한 원동력임을 보유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은 그케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 에로스, 세상의 시작"에서는 세상을 지배하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에로스 에너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제2부 에로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다양한 성 충동"에서는 에로스의 다양한 모습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제3부 남자와 여자,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존재"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보편심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4부 에로스, 끝없는 바람기와 남녀의 갈등"에서는 남녀의 보편심리에서 오는 차이점와 그로 인한 서로 다른 행동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제5부 달라도 너무 다른 남과 여의 공존"에서는 지금까지 설명해온 남과 여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둘이 서로 조화와 합일 할 수 있음과 시대의 변천에 따른 역할의 분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정신의학자 칼 융의 무의식 개념을 차용하여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무의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창고로 그리스신화를 선택하였으며, 칼 융의 원형분석의 바탕에서 우선 이야기를 읽는 재미로 출발하여 인문학 공부의 즐거움을 맛보고, 우리 내면에 켜켜이 쌓인 에로스의 심리를 발견하며 깊은 맛을 느끼는 신화여행을 안내하고 있다.
저자는 그리스신화를 과거, 현재, 미래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우선 과거로 읽으면, 우리 인류가 살아온 삶의 모습으로 인류문화 또는 풍속사라 해석할 수 있고, 현재의 관점으로는 우리 무의식에 자리한 다양한 욕망의 모습들로 이러한 무의식 속의 욕망들이 다양한 신들로 투영되어 나타났다고 하며, 미래의 관점에서는 우리 인류의 심리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를 가늠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그리스신화는 단순한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인류의 문화를 보여주는 보물창고이며, 우리의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이고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창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미처 모르고 살았던 무의식 속의 본능과 진실된 자신의 참 모습을 들여다 볼 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나름 인상깊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