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종소리를 평치면 김하나 작가가 선정한 5편의 고전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꽤 먼 곳에서 도착한 소리인데도 잘 들린다. 시간의 검증을 거친 고전답게 긴 세월을 건너오면서도 고유한 울림을 간직하고 있다. 주변 소음이 많아진 탓에 펼치기 힘든 소리가 되었지만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펼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다. 스페인어 디스프루타르의 의미는 즐기다, 향유하다 라고 한다. 스페인어 프루타가 과일을 뜻하니, 생과일로부터 다양한 즐거움을 추출하듯 즐거움을 느낀다는 의미일 것이다. 김하나 작가는 다양한 감각을 사용하여 과일을 즐기는 것처럼 고전을 감상해 볼 것을 제안한다. 고전을 읽고 듣고 만지다 보면 금빛 종소리가 도착해있지 않을까.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금빛종소리에서 소개하는 고전 중 이책을 보지 않았다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내가 스스로 찾아 읽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 같다 기원후 2세기 로마황제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든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치밀함이 놀라웠다. 김하나 작가는 책은 성능이 뛰어난 타임머신이다 라고 했는데 이 타임머신을 아무나 만들수 있는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현대의 어떤 실감하는 브이알 매체도 책만큼 우리를 개입시키지는 못한다. 왜냐면 책은 보여주면서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는 글이라는 뼈대에 자신의 상상력으로 살을 붙이는데, 그 상상은 독자만의 것이고 어찌보면 그것은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돌연변이와도 같다. 그렇다고 해서 독서가 절대적으로 개인적이고 고유하기만한 경험이라는 말은 아니다. 모든 독자의 정신 속에는 또한 같은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내용 중 수락의 자유와 황제가 되는 것에대한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황제가 된 후에도 많은 시간을 전쟁터에서 보냈고 황제의 자리를 위협하는 사건도 겪었다. 이런 상황을 버티게 하는 힘은 이기는 마음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마음이었다. 모욕적이기까지 한 상태일지라도 자신이 선택했다고 여기고 심지어 그것을 전적으로 소유하고 잘 음미하려고 했다.
순수의 시대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니 이것은 현미경으로 본 간세포들의 지형을 핑크색 세상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순수의시대를 엘렌과 뉴랜드의 사랑이야기 뿐만 아니라 노랑 장미와 은방울 꽃의 대결로 보는 것도 핑크색 세상이었다. 나의 시야가 엘렌이 아닌 뉴랜드의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생긴 감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날의 변화를 통해 자의에서든 타의에서든 그 세계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던 뉴랜드처럼 이미 벌어지기 시작한 꽃잎의 시간이 나에게도 열리기를 바란다.
변신
카프카 단편선 돌연한 출발을 읽어두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법앞에서를 알지못했다면 변신의 주인공은 문이라고 할 수 있다 라는 김하나 작가의 말을 이만큼 이해할 수 없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김하나 작가는 카프카가 독자들에게 벌레의 모습을 상상하는 데 대한 권리를 주었는데 이는 상상하지 않을 권리를 뜻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 모습을 세세히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상상하는 일. 이것은 정말 문학만이 도달 가능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맥베스
마흔 살이 넘으면 정말 맥베스를 다르게 읽게 될까?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작가의 글을 읽었다. 맥더프의 말처럼 내게 그런 소중한 것이 있었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자라기까지의 시간이 충분히 흐른 것인지는 잘모르겠지만.
아우렐리우스의 통찰은 지금도 유의미하다 인생의 초반 10년동안은 세상에 처음와서 적응하는 기간이라 생각하고 이후 사계절의 변화와 크고 작은 자연재해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의 죽음과 새 생명의 순환 등을 서른해 정도 보았다면 그것은 일종의 빅데이터가 될만하다. 웬만한 자연적 이치를 반복해서 관측하여 데이터 값의 패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 되는때가 마흔이 아닐까? 또 마흔 정도 되면 식물로 치자면 목질화가 일어나는 때랄까 몸과 마음의 외피가 점점 단단해지기 시작하는 때다. 그만큼 존재감은 묵직해지지만 그만큼 유연성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마흔쯤 되면 인생의 쓴맛이나 알수없는 헛헛함 같은 것도 종종 느껴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