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는 방법에 정답이 있는가?
저출산의 시대이다. 세상에 찾아온 아기의 어버이가 되기에는 즐길 것도 많고, 경험해 볼 것도 많고, 또 걱정해야할 것도 너무 많았다. 소중한 순간에 찾아온 새 생명에게 경이로움과 신기함 온갖 추스르기도 어려운 감정들을 느끼고도,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쉽게 사그러지지 않는다. 정보의 홍수에 SNS를 위시한 다양한 미디어들로부터 육아에 대한 다양한 가르침들을 접하면서, 적지않게 큰 울림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내용들도, 하루 자고 나면 사라져버렸다. 육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없는 터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인 뿌리를 다지기 위한 토양을 다지기 위해 이 서적을 집어들었다. 제목부터가 깨어있는 부모, 가히 이 책을 읽고 나면 적어도 육아에 대해서만큼은 백지 도화지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했다. 육아학개론처럼 탈탈 외워야될 성격은 아닌듯 보였고, 앞으로 부모로서의 삶에 대한 기초적인 표지판은 심어주겠지라는 소망을 담았다.
이 도서는 육아를 위한 기본적인 철학을 심어주는 도서이다. 아이가 울때의 대처법, 아이와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법 등의 디테일한 상황별 지침서라기 보다는, 아이와 함께 걸어갈 인생에 대한 나침반을 쥐어주는 느낌이었다. 우선 이 책은 아이와 부모의 관계는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닌 상호적인 것이라고 안내한다. 좋은 부모에 대한 열망이 가득할지라도, 육아에서 오는 다양한 스트레스에 압도되다 보면, 짜증이나 화가 날 수 밖에 상황에 마주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저자는 아이와의 갈등이 부모 내면에서 무의식적으로 자리잡고 있던 오래된 감정의 잔재들이 남아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모의 어린시절 치유되지 못했거나, 남아있던 내면의 상처와 아픔들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무의식적으로 반영되어 있다가, 특정상황에서 발끈하며 아이에게 상처를 지속적으로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런 점을 짚어준다. 책에 나온 애냐의 사례는 어릴적 엄했던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로 완벽한 딸이 되어야겠다는 의식이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었다. 그런 무의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딸 제시카에게 엄격하게 대하며 키워왔다. 제시카는 어릴적 모범생으로 이상적인 딸의 모습을 보여오다가, 청소년이 된 이후, 문제아로 변모했다. 제키사는 애냐의 억압적인 통제에 반항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럴수록 애냐의 억압도 커졌으며, 이렇게 둘의 갈등을 극단으로 치닫았다. 이후 저자의 도움을 통해 애냐는 자기가 길러진 방식대로 엄격하게만 아이를 대했던 것이, 결국 자신의 내면에 남겨져있던 감정들이 해소되지 못한 채 그대로 딸에게 되물림되어 잘못된 육아방식으로 작용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건강한 육아는 부모들이 용기있게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에 있다. 물론 이 여정은 짧게 이루어질 수 없다. 이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냉정하게 자기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내면을 되짚어볼수록, 감정의 찌꺼기를 올바르게 거를 수 있게 되고, 아이를 향해 발끈하는 감정들을 줄여나갈 수 있는 것이다. 서서히 감정적인 대응을 통제할 수 있다 보면, 아이가 도움을 외치고 있는 것을 냉철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느끼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게 때문에, 부모가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는 내면을 되돌아봄으로써, 치유를 통해 알아차림이라는 근육을 점점 단련해 나갈 수 있는 것이므로, 아이를 향한 날카로운 알아차림을 키우는 것이 아이와 소통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이를 타고난 모습으로 존중하며,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을 해주는 것이다. 즉, 인생을 같이 걸어나가는 독립적인 영혼으로서 대해주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이야기해준다. 아이를 향한 알아차림을 통해서 일방적인 가르침을 주는 것보다는 서로 소통하며 인생길을 같이 걸어나가는 것이다.
다양한 부모의 모습들이 존재하지만, 결국 아이도 독립하여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는 관점에서, 아이는 부모의 인생 동반자이기도 한 것 같다. 부모가 되는 것에 모범적인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하고 나서 아이는 부모의 인생 길 중간을 함께 거니는 동반자라는 생각을 무의식 저변에 깊게 새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