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철학의 정의이다. 매일 맞닿아뜨리는 문제들도 많고, 하루가 멀다하고 생겨나는 전세계의 이슈에 쉴 틈이 없는 현대사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치스러운 것이 되어 버렸다. 세상이 변한 것인지, 내가 변한 것인지도 모르는 채, 지금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고 생각하는 철학은 그래도, 학창시절의 기억들을 묘하게 떠올리게 하는 마력이 있다. 대학교 시절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던 소설 '소피의 세계'가 만화로 각색되어 출판되었다는 소식에, 현대 사회의 바쁨을 핑계로 버려두었던 그 시절의 향수를 꺼내볼 겸 이책을 집어들었다.
본 책은 고대 철학서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는 철학의 역사를 만화로 풀어낸 서적이다. 어느날 소설의 주인공인 소피에서 정체불명의 메모지가 전달되는데, '너는 누구니?', '세상은 어디에서 왔을까'와 같은 질문이 적혀있다. 소피는 이 메모의 질문 내용에 따라 철학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데, 고대의 신화로부터 시작된 사유의 세계에서부터 그리스, 르네상스 및 바로크 시대로까지 방문하게 된다.
초기 인류는 자연의 변화에 대한 호기심을 늘 가지며, 변화무쌍한 자연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반복되는 현상에 대해 탐구를 시작한다. 다양한 지역의 특성에 맞추어,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게 되며, 자연을 관장하는 다양한 신들을 창조해 내며 세상에 대한 해석을 구하게 된다. 이렇듯 신에게 의지하던 인간 사상은 역사가 이어질수록 반론을 받기 시작하게 되고, 그리스 시대에 들어서며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게 된다. 이 시대에 철학은 사회적인 유행이 되며 크게 번영하게 되는데, 당시 토론을 즐겼던 소피스트, 철학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소크라테스 등이 출현한다. 인간 사유의 중심도 신과 자연에서 인간 이성으로 점진적으로 옮겨간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계승하여 발전해 나간다. 고대 그리스에서 꽃을 피우며 승계된 철학은 아테네의 쇠락과 함께 그 무대를 알렉산드리아로 옮겨서 새로운 트레드를 불러일으킨다. 마케도니아의 정복전쟁을 통해 동서양의 교류점으로 거듭난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다양한 문화와 함께 철학을 융화시켰다. 키니코스 학파, 스토아 학파, 쾌락주의로 알려진 에피쿠로스 등이 이 시대에 등장하였다. 이후 인류는 예수에 등장에서 비록된 종교 중심의 사회가 강화되는 중세를 겪게 된다. 신의 향한 믿음의 사상이 그 어느때보다 강력해진 시대에는 기독교 등 중심의 세계관이 지배하게 된다. 중세를 거치며 강화된 종교적 세계관은 여러 해를 거치면서 다시 반격을 받게 되었고,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과학에 근거한 인간 중심의 철학으로 무게추가 넘어오게 된다.
본 도서는 이렇게 고대 신화 시대에서부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변화를 겪으며 발전된 철학의 발전 양상을 알기 쉽게 추적해 준다. 다양한 철학가들이 쌓아올린 토대에 결국 오늘날 우리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근간은, 주변을 향해 적절히 호기심을 갖는 법이 아닐까 싶다. 방대한 양의 정보 습득에 매몰되어, 현대사회가 우리가 크게 잃어버린 것은 놀라는 법이다. 과학의 눈부신 발전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인터넷이 열어젖힌 세계에 익숙해지다보면, 어떤 것을 마주했을때 진정 놀라는 법에 대해 무디게 만들어준다. 점점 어떠한 것이든 둔감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태도에, 새로움은 점점 희석되고 호기심을 갖게 되는 방법과 질문하는 방식을 정녕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인류 문화의 꽃이 미지를 향한 질문과 그에 대한 탐구 그리고 도전으로 피워진 것인데, 어쩌면 오늘날의 풍요와 다양성에 압도되어 이러한 근원적인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문득 학창시절이 밝고 찬란하게 기억되는 이면에는 그시절에 마주하는 매일매일의 세상이 놀라움과 새로움으로 가득해서였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학문적 배고픔을 달래며 이런저런 학습을 통해 그 배고픔을 채우던 시절이, 지금보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했을지언정 더 놀랍고 즐거웠던 것인지라..
진정으로 철학하는 것은 위대한 성인들의 가르침도 있지만, 철학하는 법의 체득을 통해서 세상을 향한 경외심을 유지하는 것이 주효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바쁘디 바쁜 오늘날에도 철학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새로움이라는 양념을 지속적으로 뿌리며, 무미건조해진 일상을 퐁요롭게 해주기 때문인 것이다. 소피의 세계 2권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