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선택의 동기 : 남다른 소개에서 관심을 얻게 되었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이고 정작 목적은 생존과 번식이라고? 진화론적 차원에서? 그렇지 않아도 요즘 내가 믿는 기독교가 주장하는 창조론이 진화론에 밀려가는 듯한 위기감에 나의 믿음도 흔들리는 와중이었다. 나는 나의 믿음 사상을 재정립해야 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주제에 관련한 책 여러권을 읽고 숙고하기로 했다. 이 책을 그 중의 하나로 선택했다.
책의 주요 내용 : 나에게 인상 깊었던 문장 위주로 수록하기로 한다.
의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분명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성이다. 숙고할 수 있기에 어제의 경험을 통해 뭔가를 배우고 내일을 준비하고 이런 책도 사서 읽어 본다. 그러나 무엇을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어떤 생명체의 생존에 꼭 필요한 것 일까?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호흡, 소화, 혈액순환 등의 거의 모든 생리적 기능들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심장이 몇번 뛰었는지, 호흡을 몇 차례 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 심장은 뛰었고 숨은 쉬었다. 우리의 생명을 꾸려나가는 수많은 기능들은 자동으로 잘 짜인 프로그램처럼 우리 의식 밖에서 돌아오고 있다. 마치 나의 손발이 스스로 알아서 운전을 하는 것 처럼. 요약하자면 의식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생존에 절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일상의 경험들을 하기 위한 필요조건도 아니다. 최근 많은 학자가 의식적 사고의 중요성이 과대 평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생각하는 모습을 인간의 대표적 특성으로 꼽는다. 왜 우리는 이성의 능력을 이토록 숭배하는 것인가?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 중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부분 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보이는 부분이 실제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 보다 보이는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동물적 본능을 통제하고 다스리기 때문이다. 중요한 기능이다. 이 능력 덕분에 먹고 싶어도 참고 자고 싶어도 새벽까지 공부하고 지금이 아닌 먼 훗날을 위해 산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통제된 행위가 본능적 욕구보다 무조건 좋고 바람직한 것 인가?
창의성이나 도덕성 같은 마음의 산물들은 동물 중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며 또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인간은 동물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밀러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 또한 진화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긴 도구일 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제를? 피카소는 캔버스에 바흐는 악보에 생을 바쳤지만 이런 행위는 동물이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악보가 사자와 추위를 막아주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창의적인 노력에 담긴 본질적 의미나 목적은 무엇일까? 본인조차도 의식하지 못하지만 상당 부분은 짝짓기를 위한 것 이다. 이것이 밀러를 비롯한 최근의 진화심리학자들이 내놓은 파격적인 대답이며 현재 많은 학자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견해다. 행복감 또한 마음의 산물이다. 창의력과 마찬가지로 행복도 생존을 위한 중요한 쓰임새가 있는 것은 아닐까? 행복은 삶의 최종 목적이라는 것이 철학자들의 의견이었지만 사실은 행복 또한 생존에 필요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마치 피카소의 창의성 같은?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의 진화 여정에서 집단으로부터의 소외나 고립은 죽음을 뜻한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의 조상이 된 사람들은 연인과 친구들을 항상 곁에 두고 살았던 매우 사회적인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사회적 인간의 유전자를 받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적 생존 비법을 전수 받았다. 이 생존 비법 패키지를 뜯어 보면 2가지 중요한 내용물이 나온다, 하나는 고통이라는 경험이다. 고통을 경험하지 못하는 동물은 오래 살 수 없다. 다리에 밖힌 못이 아프지 않으면 치료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다. 다리가 잘려 나가는 것 만큼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 것이 집단으로부터 잘려나가는 것 이었다. 이때 뇌는 사회적 고통이라는 기제를 사용해 그 위험을 우리에게 알렸다. 외로움, 배신감, 이별의 아픔,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신호가 보일 때 뇌는 이런 마음의 아픔을 느끼게 했고 그 덕분에 더 치명적인 고립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적응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생물학적 이유이다. 그리고 수십년의 연구에서 좋은 조건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훨씬 행복하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 원인이기도 하다. 아무리 대단한 조건을 갖게 되어도 여기에 딸려 왔던 행복감은 생존을 위해 곧 초기화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행복 연구에서 아직까지도 품고 있는 질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행복은 한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커다란 기쁨 한 번 보다 작은 기쁨들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
행복에 대한 이해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왜 쾌감을 느끼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직결된다. 인간만큼 쾌감을 다양한 곳에서 느끼는 동물이 없다. 쇼팽과 셰익스피어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쾌감은 먹을 때와 섹스 할 때, 더 넓게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 진화의 여정에서 쾌감이라는 경험이 탄생한 이유 자체가 두 자원(생존과 번식)을 확보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행복의 핵심을 사진 한장에 담는 다면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나의 느낌 :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은 가치를 강조하는 것 이고, 이 책이 주장하는 행복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쾌락을 자주 느끼는 것 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질문이 있다. 나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가치 있는 삶인가? 아니면 생존과 번식을 위한 삶인가? 가치도 있으면서 쾌락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