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선택의 이유 : 과학으로서 진화론이 창조론에 우세를 보이는 것 같은 지금 시대에 진화론을 인정하면서도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그 바탕적 논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책을 선택하여 읽게 되었다.
책의 주요 내용 : 나에게 인상 깊었던 문장 위주로 수록하고자 한다.
과학을 수용함으로써 우리는 진화론이라고 불리는 생물학 이론을 지구상에 다양한 생명체들이 발전하게 된 사실에 대한 신뢰할 만한 설명으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진화론을 포함하는 과학에 대한 수용을 유신론과 결합할 때 우리는 유신론적 진화론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게 된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하나님이 생명을 창조하실 때 자연 질서 안에서 자연 법칙들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과정들을 사용하셨다는 믿음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점을 그냥 간단하게 진화라고 부르면 왜 안될까? 적어도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진화라는 용어를 토론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무신론을 포함한 부정적인 사상들이 그 용어와 연관되어 있고 많은 독자가 이 단어를 떠 올릴 때마다 계속해서 불편한 감정을 느낄 것 이기 때문이다. 진화라는 단어는 이처럼 부담스러운 감정의 짐을 지니고 있는데 지금 우리는 그 짐을 배 밖으로 던지려고 한다.
성경은 문학인 동시에 문학 그 이상이다. 성경은 깊은 묵상을 통해 그것을 읽는 사람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이끄는 도구이다. 그래서 성경 읽기는 많은 경우에 기도를 동반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로서 적절한 마음과 영의 상태에서 메시지를 받아 들일 수 있게 해 준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수십 세기에 걸쳐 여러 대륙과 문화권 안에서 살았던 수십억 명의 기독교인들과 - 1세기 이후 기독교 예배를 정의해 온 공통의 경험 안에서 - 결합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미래에도 수십억명의 기독교인이 성경을 읽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런 거대한 전통에 속한 일부일 뿐이다. 전통은 우리의 경험을 통과하여 미래로 이어질 과거의 지혜로부터 정보를 얻는다. 언제나 우리는 이렇게 살아 있고 풍요로운 전통을 의식해야 하며 마치 우리가 앞서 살았던 조상들의 지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처럼 다시 말해 우리만이 특권적인 통찰력을 가진 독특한 시대에 사는 것 처럼 우리 자신을 그 전통과 단절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견해의 상당 부분도 후손들의 비판에 의해 틀림없이 수정될 수 밖에 없음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양자역학을 통한 새로운 발견인 자연이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도발적이며 신학적으로도 암시하는 바가 크다. 하나님은 새로움을 탐구할 수도 있고 새로운 일들을 시도해 볼 수 있는 능력이 내재된 세계를 창조하셨다. 그러나 이 모든 자유는 전반적인 규칙성의 틀 안에 놓여 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존재하는 이 세계의 속성이다. 여기서 핵심은 하나님이 창조세계에 수여하신 창조성이 그분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자유와 신학적 유비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창조된 모든 세계도 자유를 소유한다. 자유는 그것을 합당하게 사용해야 하는 책임과 함께 온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끔찍한 일을 행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지는 못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자유는 아우슈비츠나 다하우에 있는 가스실을 지을 때 그리고 2001년 9월 11일에 세계무역센터를 파괴할 때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기에 가스실을 만든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악에 관해 하나님은 책임이 없으시다.
앞서 말한 것 처럼 악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진화가 악의 문제를 덜 심각하게 만든다고 확실히 주장하고 싶다. 고양이가 쥐를 고문하도록 만드는 본능은 진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출현할 수 있다. 그런 본능이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회의론적 유신론자인 마틴 가드너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악은 풀 수 없는 문제이며 우리 존재에 대한 신비의 일부로서 단순히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이라고 간주한다.
우리가 인간의 도덕성을 어느 정도 실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 즉 인종 청소 혹은 아동 성폭행 등에 대해 몸으로 우러나는 본능적 반응이 단순한 정서적 반작용 이상의 것 이라면 - 우리는 자연 질서를 초월하는 어떤 실재와 대면하는 셈이다. 과학은 단지 세계가 어떤 존재 상태에 있는지만 말해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동 성폭행에 대해 강한 반작용을 보인다는 사실 만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잘 못 되었다는 강력한 느낌은 진화의 역사에 근거를 두지 못한다. 그런 도덕법의 실재성을 받아들인다면 그때 우리는 그 법의 근원을 질문해야 한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탐구에 관해 합당한 결론이 되신다.
느낀 점 : 우주가 처음 생성된 빅 뱅에서부터 인간이 인간다워진 빅 브레인까지의 여정이 신기하기도 하다. 우연적으로 이렇게 되었다기에는 그 과정의 복잡다단성과 인과적인 면에 비추어 누군가의 어떤 조정이 있지 않고는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나를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