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내내 사이코패스의 자기합리화를 듣는 것 같았다. 실제로 정유정 작가 역시 종의 기원을 ‘사이코패스의 자기 변론서’라고 칭했다고 한다. 책을 몇 장 넘기지 않아도 서술되는 모든 묘사들이 유진이 본인의 어머니를 죽인 범인임을 가리키고 있지만, 정작 스스로는 이 간단하고도 끔찍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몇 시간에 걸쳐 어머니가 죽게된 이유를 파헤친다. 그런 주인공을 보며 어이없음에 말문이 막히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밤새 유진이 죽인 피해자가 어머니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유진은 끝까지 스스로가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약을 끊어서’라고 하지만, 사실 간질같은 신체적 질환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정신 구조가 정상이 아님 또한 책을 읽는 내내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다. 유진은 어떻게든 지난 밤의 일을 기억해내려 하면서 동시에 어머니의 목소리로 환청을 듣게 되는데, 집으로 찾아온 이모를 죽임으로써 이 환청마저 사라지고 그 내면에 쌓여있던 최소한의 이성과 양심마저 무너진다. 지난 20여년간 유진의 엄마와 이모가 노력했던 것이 바로 이 최소한의 이성과 양심을 기반으로 정상 범주의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것이었는데, 결국 실패한 셈이었다. 안타까우면서도 후반부에 들어서 어린시절 유진의 형이 물에 빠져 죽던 날을 담은 어머니의 일기를 보면서 이미 그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16년 전, 이미 내 뜻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을 때 본능에 의해 형을 절벽에서 밀었던 유진을 보면서 어떻게 개선 가능성을 볼 수 있을까. 제3자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유진의 어머니 지원은 그 모든 것을 덮어두고 갈 정도의 보호 본능을 발휘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이에 대한 분노와 막연함에 유진을 더 구속시키게 되고, 이런 기이한 성장과정을 거치며 유진은 결국 ‘절대악’만 남은 20대가 된다. 지원의 결정이 잘못되었고, 당신 때문에 결국 아들이 연쇄살인마가 되었다고 탓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내 자식이 타고난 사이코패스로 태어났을 때, 더 적절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최선의 선택을 생각해내고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지원과 혜원이 강력한 ‘통제’를 선택했지만 스스로를 끊임없이 합리화하고 본능이 원하는대로 살아가려는 유진은 점진적으로 약을 끊으며 그 통제에서 벗어났고, 이성의 범위를 넘어섰다. 첫번째 방식이 통제가 아닌 자유와 방임이었더라 해도 유진의 일생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본인 내면 속의 청군과 백군을 나눠 놓은 사이코패스는 계속해서 스스로의 쾌락을 달성시켜줄 청군을 향해 갔을거다.
사실 이야기의 흐름은 말그대로 범죄자의 독백과 변명에 불과하지만, 읽으면서 사이코패스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사이코패스가 전문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기에 유진이라는 사람만을 놓고 본다면, ‘이기심’이 가장 극단적으로 발달한 인간 유형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진은 스스로 저지른 일에 대해서 판단하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결과를 판단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에 따른 책임과 영향을 계산하며 그것이 본인에게 어떤식으로 다가올지까지 생각한다. 지능은 고도로 발달해서 계산은 손쉽게, 본인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사건을 재해석하여 그렇게 보이도록 꾸미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시킨다. 그것이 가능함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에 어머니를 살인한 이후의 연쇄 살인도 거리낌 없이 행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또한, 감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더 소름이 끼쳤다. 타인에 대한 감정만 배제되어 있을뿐 본인을 변론하고 합리화하는 과정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뿌리 깊은 연민이 느껴졌다. 작가의 의도와 일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는 유진은 발 딛고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그와 같은 사람이 극히 소수이며 스스로가 비정상임을 알아가게 되면서 스스로를 철저히 보호하고 동시에 타인을 지배함으로써 어딘가에 소속될 수 없고 어울릴 수 없는 답답함을 해소하는 것 같았다. 타고난 악이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더 커져가면서 연쇄 살인마가 되었다는 점이 참 무력하게 느껴졌다. 꽤 두껍게 써내려간 유진의 자기변론을 나는 끝까지도 이해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