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의 허송세월 > 을 읽고
책 제목처럼 책이 매일 거실에서 굴러다니듯이 놓여 있는데도 읽지 못하고
리뷰를 작성해야 하는 이틀전까지 밀리다 밀리다 읽어 가는 숙제 같이 책이 되었다.
처음에는 분량이 많지 않고 작은 판으로 만들어져 있어 금방 읽고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손에 잘 잡히지 않아서 고생을 한 책이다
책은 김훈 작가의 산문집이자 하루하루를 기록한 일기 같은 느낌이었다.
대표적으로 127페이지에서 작가는 자신의 하루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책을 읽다가 눈이 흐려져서 공원에 나갔더니 호수에 연꽃이 피었고 여름의 나무들은 힘차다.
작년에 울던 매미들은 겨울에 죽고 새 매미가 우는데, 나고 죽는 일은 흔적이 없었고 소리는
작년과 같았다. 젊은 부부의 어린애는 그늘에 누워서 젖은 병을 물고 있고 병든 아내의
휄체어를 밀고 온 노인은 아내에게 부채질을 해 주고 물을 먹여주고 입가를 닦아 주었다.
마치 그림처럼 일상생활의 한 장면을 글로써 그려내고 있다.
김 훈작가는 이런 우리의 주변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낸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기자로써 오랫동안 글쓰기를 연습해 왔던 것들이 지금과 같은 탁월하고 생생한 활어처럼 살아 있는
글들을 쓰게 하는 비결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저자는 다른 책에서 자신이 산과 자전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고 실제로 산과 자전거를 타는
그의 모습을 많이 책에서 표현하였다. 이 책에서도 유사한 대목이 나오는데
젊었을 때,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 볼 때 나는 세상속으로 내려가고 싶었고, 산 밑에서 산봉우리를
올려다 볼때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지금은 이쪽저쪽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둘레길을 조금 걷다가 마을버스를 타고 마을로 돌아온다
작가의 소박하지만 나이 먹은 어른스러움이 느껴지는 문장이자 나도 나이 먹어서 저런 모습이 될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의문이 함께 존재한다
특히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나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지만 마치 그림자 처럼 사람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는 녀석이다
책에서 죽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죽으면 말길이 끊어져서 죽은 자는 산자에게 죽음의 내용을 전할 수 없고 죽은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지할 수 없다. 인간은 그저 죽음을 맞이할 뿐, 죽음을 경험할 수 는 없다고...
저자는 왜 책의 제목을 <허송세월>로 지었을까???
이책에서 저자는 허송세울을 흐르는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시간의 덧없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과연 허송세월을 하면서 그의 인생을 흘려보냈을까??
책을 읽으면서 그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천천히 한단락 한다락 뜯어보면서
작가의 글이 단문이자 산문이면서 특유의 단어와 묘사가 적절히 버무려져 있음을 발견했고 특히 이 책의 내용은
그이 삶을 투영함으로써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인간시장의 작가인 김홍신씨도 나이 먹으면서 썼던 책에서 삶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 라는 점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는데 김훈 작가의 책에서도 이제는 왜라는 질문에는 초연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책을 통해서 어떻게 라는 물음표에 저자가 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와 시인은 글쓰기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노년에 접어든 김훈 작가는 일산 호수공원에 앉아 늙어가면서
즐기는 일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을 툭툭 마치 돌멩이나 새침한 아가씨가 한마디씩 내뱉는 말처럼 이 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앞에서 이야기 한 제목을 허송세월로 정한것은 저자의 탁월한 한수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
특히 아직까지 늙음을 경험해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공감할 수 없지만 40대가 넘어서 아저씨란 말이 당연해지고
익숙해지는 중장년층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돌아본셔 한번쯤 느끼게 될 감정이
허송세월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의 감정처럼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노년에 이르러 일상에서 느낀 크고 작은 깨달음
그것이 허송세월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