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의 <유럽 도시 기행 1>을 읽으며
나의 유럽 여행이 떠올랐던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책에서 방문한 도시들 중 두 곳, 로마와 파리는 내가 가 본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젊은 나는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고,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어떤 걸 싫어하는지, 어떤 곳이 유명하고 그 도시에 무슨 이야기가 있는지 몰랐다.
그야말로 '무지'의 상태로, 국가와 도시명만 알고 떠났던 여행.
처음엔 이국적인 풍경과 건물들, 역사적인 장소와 박물관 등에 신기했지만
도시를 다니다 보니 다 그곳이 그곳 같고 교회도 그 교회가 그 교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도시였던 런던, 파리를 거치며 나는 금세 질리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명품 쇼핑을 하러 다녔던 형 누나들을 따라서
그때까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던 다양한 명품 옷, 시계, 가방들을 구경하고 다녔었다.
(물론 그것도 상당히 재미있는 경험이기는 했다.
파리인지 로마인지 어떤 명품 숍에서는 유창한 한국어를 하던 직원이 있어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만약 그때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나의 유럽 여행은 크게 달랐을 것이다.
이 책은 아무리 화려하고 멋진 곳이더라도 내가 알지 못함으로써 '풍경'에 지나지 않았던 곳들을
저자의 풍부한 상식과 지식, 그리고 본인 스스로의 학구열을 통해 찾아낸 정보들까지 합쳐
특별한 곳, 의미 있는 곳으로 만들어준다.
로마 여행에서 가보지 않았던 바티칸 시티와 콜로세움을 이 책을 보며 꼭 다시 가 보고 싶어졌고
파리에서는 베르사유 궁전과 오르세 미술관을 다시 들를 때 꼭 가보고 싶어졌다.
정말 기대했던 아테네와 이스탄불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그래도 나중에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기에
그 여행을 준비할 때 이 책을 다시 보고 참고해서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재미있는 것이 여행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유럽 여행을 떠날 때 정말 좋은 가이드북이다.
저자가 워낙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지만
너무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여러 정보들을 잘 섞어서 여행기를 써 내려갔기 때문에
말 그대로 유럽의 4대 도시의 '콘텍스트'를 파악하기에 좋았다.
내가 갔던 여행을 돌아볼 수 있어서 너무나 만족스러웠던 책이었다.
책을 읽어보니 꼭 다시한번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책 속에서 뽑은 문장들을 소개하며 마무리 하려한다.
개인의 독립성과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무지하고 변덕스러운 대중이 독재자와 다름없는 야만 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종교적 독단이나 차별을 정당화하는 고정관념 위에서 일부 계급만 주권을 나눠 가지는 정치체제는 민주주의일지라도 장기 존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아테네의 역사는 증명해 보였다.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1>, 71~72페이지에서
아테네는 한 국가의 수도이고 3천 년 역사를 품고 있지만 화려하지도 고풍스럽지도 않았다. 냉정하게 말하면, 초라해 보였다.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1>, 74페이지에서
콜로세오는 로마 정치체제 변화의 결과이며 상징이었다.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1>, 110페이지에서
사실 아야소피아는 그 자체가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이 도시가 콘스탄티노플이 된 이후 지금까지 겪었던 중요한 사건들을, 이곳에서 명멸했던 여러 문명의 영광과 수치를, 이스탄불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끌어안고 있다.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1>, 177페이지에서
프랑스공화국의 수도인 파리는 앞에서 만났던 세 도시와 달리 역사의 공간과 시민의 생활 공간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지 않으며, 오래된 건축물도 모두 살아 숨을 쉰다.
(중략)
이렇게 된 것은 무엇보다 파리가 젊은 도시여서다.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1>, 246페이지에서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괴롭다. 루브르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체험하는 데 딱 맞는 박물관이다.
(중략)
예술 작품을 보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루브르에서도 어김없이 작동한다.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1>, 260~261페이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