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는 나와 같이 관련 지식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늘 어려운 주제이고, 시도를 했다가도 번번이 좌절로 끝이 나곤 해서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책 분야다. 그러던 중 칼 세이거느이 코스모스 함께 읽기에 도전하면서 과학서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이는 코스모스가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잘 쓰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계기로 과학서에 접근하는 나의 태도 내지는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도 있다. 지식 습득을 목적으로 어려운 내용을 애써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단 인문학적 사유를 확장하는 방편으로 가볍게 읽어나가는 방식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관점을 바꾸니 천문학, 물리학, 생태학 등 과학 전반의 책들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읽혔다.
최근에 읽은 떨림과 울림은 다양한 물리학의 개념을 쉽고 흥미롭게 설명하며 생각의 폭을 넓혀준 책이다. 알쓸신잡3에 출연해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펴낸 과학서로,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을 물리학이 인간적으로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라고 밝히고 있다. 그의 바람이 통한 사람이 비단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책의 첫 장을 펼칠 때는 난해한 과학과 물리에 대한 떨림이 컸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면 인문학적 성찰의 울림이 오래 지속되는 책이다.
우리의 생각이 우주적인 차원으로 확장되면 드넓은 우주에서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지금 내가 고뇌하고 있는 이 일들이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우주의 작은 먼지 같은 창백한 푸른 점의 지구에서 더 작은 존재인 나를 둘러싼 사건, 상황, 사람들. 정호승 시인은 산문집 내 인생의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에서 매일 전쟁 같은 하루를 아옹다옹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해보세요. 라고 조언한다. 떨림과 울림을 읽어나가다 보면 사고의 폭이 우주에서부터 원자, 전자까지 무한대/무한소의 영역을 넘나들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과학이 우리의 일상에서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사유의 주제가 될 수 있음을 전달한다. 즉 독자에게 이 책이 울림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그러나 이 책도 이여기가 진전되다 양자역학에 이르게 되면, 역시나 일반인의 이해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독자의 의식이 점점 안드로메다로 멀어지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저자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인먼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위로한다. 이 세상에 양자역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김상욱 교수는 이와 같은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는 것이 과학이며, 과학자들은 뒷받침할 물질적 증거가 있을 때만이 안다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은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사고방식이라고 강조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지식이 아닌 태도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과학은 인간적이고 따듯하낟. 과학에 관심은 있으나 나처럼 망설였던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입문서로 추천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각각 10여페이지 남짓 되는 19개의 글을 통해 고전 및 현대물리학의 중요한 개념 및 내용을 해당 분야에 대한 전이해가 전혀 없는 일반인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게 서술한다. 그리고 그 의의를 인간적이고 인문학적 관점에서 간략하게 요약한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과학자답게 일체의 군더더기 없이 사실에만 충실한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를 구사하지만, 서늘하게 느껴질 정ㄷ로 냉정한 자신의 견해를 인문의 향기를 풍기는 시적이고 함축적인 언어에 담아낼 줄도 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문체와 표현이야말로 저자의 책이 가지는 인기의 중요한 요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과학이란 단지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선입견 없이 객관적이고 재현 가능한 물질적 증거에만 기초하여 결론을 내리는 태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과학의 힘은 결과의 정확한 예측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증거가 부족하면 모른다고 말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조금만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습관적으로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준다는 기계 장ㄹ치의 신부터 소환하거나, 증거가 없어도 일단 믿으면 알 수 있다는 대답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필요를 느끼지 ㅇ낳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고 절실한 믿음이 아니라 더 치열하고 철저한 질문과 탐구라는 과학적 태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