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어떤 TV프로그램에서 인간의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을 본적이 있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미디어의 발달 등으로 사람들은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고
또 그중에는 잘못된 정보들이 있어 향후 정보의 정확성과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나 또한 유튜브와 SNS등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내 생각에 대한 객관성보다는 주관성 즉 내 생각의 맞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하는거 같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보는 유튜브와 SNS등은 알고리즘을 통해 제공되는 정보 등으로 그것은 나에게 맞춰진 정보이지 그것이 맞는 정보일까 라는 의심을 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내가 필요한 정보만 찾아보고 알고리즘에 의해 내게 맞춰진 정보만을 보면서 편견과 생각의 오만함이 커질 수 있을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며.. “내가 생각 하는 것이 과연 맞는걸까?‘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던 중 나는 팩트풀 니스라는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책을 설명하는 구절 중에 세상을 왜곡해서 보는 인간의 본능에 대하여..
라는 문구가 나에게 적지 않은 울림을 주었던 것이다.
펙트풀니스라는 책은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 라는 긍적적인 시각을 심어주는 동시에 자기 신념과 사실이 부합하는지를 돌아보라고 충고를 해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물안에서 계속 갇혀서 살기보다는 올바른 세상을 보는 방법에 대해 짚어주고 있어 빌게리츠가 청춘들에게 추천하는 도서로 유명해 지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버락오바마 전 대통령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 몰고 5권 중에 하나로 추천하여 출간 이후 6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울 정도로 힙한 책이었다니.. 더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 고민 없이 이 책을 선택하여 읽었고. 책의 내용중 기억에 남는 부분에 대해 정리를 해볼려고 한다.
1. 끝만 보는 인간들 – 간극본능
사람들은 누구나 양극단만 치우쳐져서 세상을 보는 간극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작가는 말을 한다. 예를 들어서 정치적 경해가 좌파와 우파 두가지로만 나뉘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간극 본능을 이해할 수가 있다. 이는 현시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조선시대 성리학에서도 이분법적 세계관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가 있다. 양과 음, 임금과 신하, 양반과 노비, 남자와 여자를 나누어 생각하는 사고방식 때문에 조선시대 여성과 노비들의 지위는 낮을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세상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닌 간극 사이의 것들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따. 보통 우리가 나라마다 소득기준을 나눈다면 누구나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두가지로 대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총 4가지의 단계로 나누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1단계는 국가의 특징은 물론 물을 긷는데 한시간 정도 걸리고, 전기가 공급이 되지 않는 나라, 2단계는 국가는 자전거를 살 수 있고 하루 소득이 5천원 정도 되며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 불안정하여 냉장고와 가전제품들을 사용 할 수 없는 정도의 국가, 3단계는 자전거를 넘어 오토바이를 구입 할 수 있으며 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고 전기도 안정적으로 들어와 냉장고를 가동할 수 있기 떄문에 시선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국가, 마지막 4단계는 자가용으로 운전을 할 수 있고, 비행기를 타고 해외 여행을 갈 수 있는 3단계 국가와 확실하게 구분지을 수 있는 나라로 나라를 구분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세부적인 분륜는 일반인들이 범하는 간극 본능과 많은 차이를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분이 적으니 거기에 내용도 적어질 수 밖에 없기 떄문에 사람들의 오류가 심해지는 것은 아닐까? 작가가 말한 것처럼 국가마다 단계별로 생활의 차이가 분명히 있는데 어쨰서 사람들은 그저 잘 사는 선진국과 못사는 후진국 두가지로만 나누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이물음에 대한 답은 빌딩으로 설명을 할 수 있다. 4단계를 엠파이어 빌딩이라고 생각해 보았을때 그 빌딩 위에서 내려다보면 1층 집이나 10층 건물이나 모두 비슷하게 보일 뿐이다. 즉 높은 건물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자그마한 건물들의 차이를 식별하기 어렵듯 4단계 사람들의 관점 입장에서는 나머지는 그저 모두 후진국으로만 보려는 시각떄문인 것이다.
그렇기 4단계 사람의 세상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 두 부류로 나뉜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시각이라는 것이다. 우리 또한 별 다른 생각 없이 항상 그렇게 구분을 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간극 본능의 차이라는 것이다.
간극본능의 또 다른 예를 브라질을 두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브라질 국민의 상위 10%소득의 비율이 전체 소득의 4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본 우리는 빈부격차가 심하네 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브라질 통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브라질의 4단계 소득별 인국 분포를 보면 알 수 있다. 실제 1단계에서 머무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고, 2단계부터 많아지면서 3단계에서 사는 사람이 가장 많으며, 마지막 4단계는 10%정도로 드물게 나타나는 통계를 볼 수 있다. 이렇게 전체 수치를 놓고 보면 브라질 중산층이 탄탄하고 나라가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우리는 1단계 사람들과 4단계 사람들의 양 극단만 보기 때문에 브라질을 왜곡해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특히나 저자는 우리가 이러한 시각을 갖도록 노력하는 배후는 언론이라고 비판하였다. 상위 10%가 전체 소득 40%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팩트이지만 언론이 이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어론에서는 상위 10% 4단계 사람의 모습이 아닌, 브라질의 상위 0.1%의 모습만 보도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요트, 호화 전용비행기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단지 브라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흔히 우리가 친근하게 부르는 아랍의 만수르는 사실상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기 보다는 상위 0.1%를 지칭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산유국 아랍의 0.1%사람들은 애완동물로 호랑이를 키우고 슈퍼카를 자전가 바꾸듯이 바꾼다 다른 정보만을 가지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는 우리의 모습이 보여진다.
왜 우리는 이러한 환경에 노출되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보기 때문이다. 어론들은 이를 아주 잘 이용하고 있는 것 뿐이다. 우리가 흔히 유니세프 난민이야기, 아프리카 식량난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불쌍하다라고 말하지만 빨리 채널을 돌려버리는 것처럼 잘 살고 화려한 것에만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대중의 이기적인 심리 때문이다. 저자는 간극 본능을 억제하고 다른 사람으로 보려는 힘을 키우는 방법은 다수의 사람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잘 살고 못사는 사람들로만 볼것이 아니라 간극 속에 더 많은 사람들이 사는 모습에 집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 같은 간극속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챕터를 보면서 인간의 분류가 얼마나 편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인지. .그것이 불러오는 결과물이 얼마나 편향적일 수 도 있다는 것에 세상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2. 세상 인구는 단지 증가할 뿐이라는 오해.
세계 아동 인구 변화 그래프를 보면 1950년부터 2000년 초반까지 수직적으로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2100년부터는 어떻게 달라질까? 인구가 계속해서 수직상승 할까? 아니면 증가는 하지만 더디게 올라갈까? 아님 조금만 증가하다가 정체가 되어버릴까?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의학 발전으로 인해 수명이 늘어나고 경제발전으로 인해 안정기를 맞이하면서 인구수는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답은 조금만 증가하다가 결국 정체가 되어 버릴것이다. 이건이 인간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직선본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직선 본능의 단골 손님은 투자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철수라는 아이는 어렸을때부터 공부를 잘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성적이 분명하게 좋을 것이라는 인간의 심리가 있다. 과거를 보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확정 짓는 것이다. 이는 회사의 투자에도 해당된다.
어떠한 회사가 투자를 받기전까지 투자자들은 이 회사의 과거 행적들을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갈 발전 가능성을 보고 투자 하게 된다. 갑자기 성장이 꺾일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누구도 투자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다를 수 있다는 말을 저자는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구수는 더 이상 수직 상승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저자는 빌게이츠로 예를 들었다. 빌 게이츠는 1단계 극빈충에 사는 어린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후원 활동을 하고 있다. 음식도 제공하고 교육도 제공하지만 이에 비해 비판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있다. 비판을 하는 이유는 인구 수 때문인데 인구 수는 어차피 증가하기 때문에 가만히 내버려 둬도 죽어야 되는 아이들이라는 논리이다. 안타깝지만 그런 운명을 어쩔 수 없이 가지고 태어난 후진국 아이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살리려면 인구 수는 한없이 폭발하여 환경오염, 난민 등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인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의견을 두고 개소리라고 할 정도로 분노했다.
그 이유로 인구 수는 절대 폭발되지 않으며 오히려 인구 수가 감축되어 조절할 수 있다 라는 의견으로 받아쳤다. 1단계 극빈층 아이들을 후원해 준다면 그들이 교육의 기회를 얻어 2단계 3단계로 나아가는 사회 발전이 일어날 것이며 발전된 사회 덕분에 영유아 사망률은 오히려 저하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굳이 아이를 많이 낳을 필요가 없어지고 출산율은 급감될 수 있다는 이야기 이다.
이 챕터는 은행원으로써 과거 재무제표로써 미래를 예측하는 직선 이론이 과연 잘못 될것인가 라는 의문을 가진다. 과거의 축적된 데이터로 추세적인 예측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정확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며 작가와의 다른 생각이 들어 나름 재미 있었다.
3. 3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 공포본능
저자 한스로스링은 공포본능의 예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스웨덴에서 재직했던 젊은 의사시절때의 이야기이다. 환자가 엄청나게 많은 양에 피를 흘리며 실려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도저히 상처를 찾을 수가 없었다. 환자의 직업은 조종사로 상 하의 모두 붙어있는 점프슈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상처를 찾는 것이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슈트를 잘라내야만 했다. 슈트를 자를 기구를 기다리고 있던 급박한 상황에서 환자가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귀 기울여보니 스웨던어가 아니며 마치 러시아어로 들르는 것이었다. 저자는 유창한 러시아어로 환자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안심하세요, 여기는 안전한 스웨덴 병원입니다.“ 그 말을 하자 갑자기 환자의 동공이 커지며 놀라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저자는 의문의 생각이 스치게 된다. ”스웨덴 병원이라고 러시아어로 안심시켰는데 왜 환자는 더 놀라며 당황하지? 잠깐만 소련 조종사가 피를 흘려 스웨덴에 왔다는 것은? 바로 3차 대전이구나“ 이러한 생각이 스치자마자 공포감은 더욱 밀려들어 왔다고 한다. 공포감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던 한스를 일깨워 준 것은 수간호사였다.
수 간호사는 이 조종사의 슈튜는 매우 비산 옷이기 떄문에 절단할 수 없으며 저체온증으로 온 환자로 내원했기 떄문에 굳이 절단을 해야할 이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환자는 러시아 사람이 아닌 스웨덴 조종사로 단지 입이 얼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또한 바닥에 흘렀던 것은 피가 아니라 구명조끼에서 나온 잉크에 불과했다. 하지만 저자는 공포본능에 사로잡혀 말을 잘못알아듣고 소련 말을 해서 스웨덴 환자만 놀라게 만드는 웃픈 경험담이다. 다소 코미디한 이런 상황에서 저자가 하소 싶은 말은 별것 아닌 상황에서도 인간은 극단적인 공포를 느끼 수 있고 그 공포 때문에 사실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 머릿속이 공포에 사로잡혀 있으면 사실이 들어올 틈이 없다.“ 라는 말이 이번 챕터를 관통하는 문장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공포 본능의 또 다른 이야기. 비행기 사고
2016년 기준 비행기 사고율은 자동차로 죽을 확률의 65분의 1로 0.000025%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비행기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래야만 뉴스에 나오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한명이 다치거나 죽었을 때 보다 100명이 다치거나 죽었을 때 보도하는 비율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크고 무서운 사건들만 선별해서 보여주는 언론들은 공포 본능을 이용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내 생각에 보험도 똑같은 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공포라는 심리에 지배당할 때면 오히려 상황을 더 차분하게 인지하고 본질을 차으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4.단순 크기 비교의 오류- 크기 본능
2007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 경제 포럼 중 유럽대표가 기후변화와 환경,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중국과 인도에게 모두 떠 넘긴 사례가 있다.
”우리는 중국과 인도에서 무공해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석탄 에너지를 무공해 연료로 바꾸는 방법을 강구해야만 해요.“ 이에 인도 공직자는 인도와 중국의 탄소 배출랴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높다고 하는 것에 두가지 측면으로 반론을 제기 했다.
”첫번째, 지난 100년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여 기후를 나쁘게 만든 주범은 유럽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인구 비례로 나누어보자.“ 이 인도공직자의 두 번째 수가 신의 한수였다.
이 사람의 논리는 단순히 중국과 미국의 이산화탄소 배출의 총량만 비교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의견이다. 중국 14억명의 몸무게를 다 더하고 미국의 3억명의 몸무게를 더해본다면 당연히 중국의 몸무게가 더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를 두고 중국의 비만도가 미국보다 더 높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논리를 유럽이 하고 있다는 반박인 것이다. 저자는 이 사례를 두고 크기본능의 좋은 예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확한 비교를 위해선 뉴스에 수치가 달랑 하나만 나오면 내 머릿속에는 항상 경보음이 울린다. 그 수치가 1년 전에는 어떘을까? 10년 전에는? 1인당으로 환산하면 몇일까?
여러 가지 비율을 비교한 뒤에야 그것이 정말 중요한 수 인지 판단 할 수 있다는 작가의 말은 비교시 단순 크기비교가 범할 수 있는 오류를 가장 잘 지적해 주는 말이 아닐까 한다.
5.타고난 것은 변하지 않는다-운명본능
만약 중국과 아프리카 둘 중에서 한곳에 투자를 해야한다면 어디에 투자하려고 할까?
중국이 더 발전했기 떄문에 중국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국은 너무 성장했기 떄문에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에 쿠자하겠다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가나,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같은 나라들은 급격하게 발전중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국가중에 이미 1단계를 벗어나 2단계, 3단계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 한스는 이런 의견을 나누는 강연에서 어떤 사람이 끝나자마자 찾아와 이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을 비추었다고 말했다.
”선생님 강연 잘 들었어요. 그런데요 선생님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아프리카는 발전하지 못해요. 제가 그곳에서 근무를 해봐서 알아요. 그 사람들은 제도, 습성, 종교는 절대 바뀌지 않아요.“ 운명 본능은 타고난 특성이기에 사람, 국가, 종교, 문화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본능은 주변에서 일어나느 사회의 모든 헌신적인 변화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고 저자는 말했다. 그렇다며 ㄴ미국과 이란 중 출산율이 더 낮은 나라는 어디일까? 2017년 여성 1인당 평균 출생아 수를 비교해 보았을떄 미국은 1.9명 이란은 1.6명으로 이란이 더 낮게 나타났다. 요즘 이란은 2단계, 3단계 넘어서고 있는 단계로 교육수준으로 높아졌고, 그 보수적인 나라에서 남녀모두 성교육을 의무화해서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세계 최대 콘돔공장이 이란에 들어서기 까지 했다. 즉 출산율은 종교나 국가 등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득기준과 교육으로 결정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밖에도 단일관점 본능, 비난본능, 다급한본능 등 저자는 다양한 인간의 본능이 미치는 현상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나는 이책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의 방향과 결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이런한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잘못된 사고를 고치고 좀 더 좋은 결과를 얻으면서
결국 사회는 발전하고 성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끝으로 해본다.
오랜만에 생각의 정확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