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즐거울 것 같아서, 선택을 한 책인데 막상 후기를 작성해야 할 시간이 오니 이만큼 당황스러울 일이 없는 책이다. 아이들의 놀이북과 같은 이 책의 한 페이지를 말그대로 한땀 한땀 채우면서 느낀 것들을 뭐라고 써야 하나 2천자씩이나. 이제는 2학년이 된 아이가 5살때부터 갖고놀던 디즈니 스티커 아트북이 있다. 사실은 이번에 이 폴리곤 아트북을 채우면서 다시 생각이 나 다시 꺼내어서 아이와 번갈아가면서 1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집중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당연히 예전에 고른 동화적 그림이었으므로 1시간이 지나니 미니마우스 한 페이지가 완성이 되었고 꽤나 즐거운 경험이었다. 오랜만에 워밍업을 하였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다른 작가도 아니고 고흐의 작품이다보니 사실 낯익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신기하긴 하네,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인 그의 그림을 스티커로 하나하나 조각으로 채운다는 것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느낌도 준다. 어울리고 아니고를 떠나서 뭔가 완성도있게 표현해낼 수 있는 건 맞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그럼 무엇으로 먼저 시작해볼까? 몇개의 그림 중에서도 가장 스티커로 어떻게 표현하지 궁금했던 작품은 바로 표지에도 나와있는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테라스'이다. 흠... 뭔가 질감이 곱고 부드러운 느낌만은 아니다. 그리고 조각조각 밤의 어두움 아래에 묻은 달빛, 테라스의 식당에 내려앉은 어둠을 뒤집는 무언가 반전의 화려함. 그리고 유럽 특유의 매끄럽지 않은 보도블록, 그리고 그것을 오롯이 모두 즐기고 있는 사람들까지 매우 복잡한데? 뭔가 몸에 배어있는 것처럼, 거기서부터 시작해야할 것만 같은 생각으로 저 멀리 코너의 어둠끝에서 시작해서 앞까지 1미리씩 다가와야할 것 같지만, 이 여러개의 조각을 채우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평화롭게 1번부터 숫자를 따라가는 방법이다. 가장 고민없이 완성하는 방법이겠지? 그런데 하나씩 숫자흐름을 따라 별 생각없이 채우다 보니 그래도 여전히 아쉬움은 남았다. 뭔가 질서가 없이 독자?의 입장에서 채우는 방법이 아니고, 고흐라는 작가가 이 그림을 완성할때 그랬을 것처럼 화가의 관점에서 넘버링을 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너무 과한 기대인가?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긴 한다. 그랬다면, 더욱 더 내가 이 작품을 직접 그리는 화가의 느낌으로 충만하게 즐겼을텐데. 담에는 그렇게 해달라고 한번 건의해봐야겠네.
몰랐는데, 요새 이러한 폴리곤 스티커 아트가 유행이구나, 그렇다면 더욱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많겠구나.
어쨌든 첫 그림을 마쳤으니, 그럼 다음은 무엇으로 넘어가볼까. 그 다음에 내가 고른 그림은 '우편배달부 조셉 룰랭의 초상'이었다. 이 역시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그림인 건 맞는데, 왜 저런 자세와 표정(사실 보이지는 않지만)을 하고 있는 걸까 시작하기 전 갑자기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았다.
1888년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간 고흐는 원래 주식이 술과 커피라고 할 정도로 술을 즐겼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거의 매일 술을 마셨던 그에게 좋은 술친구가 하나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이웃에 사는 우편배달부 조셉 룰랭이었고, 함께 술을 마시면서 두 사람은 꽤나 돈독한 우정을 유지했던지라, 고흐의 작품 중에 그를 그린 작품이 6개라고 한다. 조셉 룰랭이 저녁에 한번 초대하면 (그의 보답으로?) 그림을 그려주고, 술을 한번 사주면 또 그림을 그려주고 하는 패턴으로 가까이 지냈다고 하는데 여러가지가 결핍된 인물이었던 고흐에 비해서 열정을 가진 사회주의 신봉자였던 조셉 룰랭과 아내, 아이 등 그의 가족은 그 전체로 고흐에게는 어떠한 완벽한 가족의 표상과 같은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그 시기에 교류하던 고갱으로부터 화풍에 대한 다양한 충고를 들은 고흐가 정신적으로 무언가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때 조셉 룰랭 가족의 존재는 더욱 더 크게 다가왔고 그의 위로를 통해서 정신적인 편안함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알았을까? 그가 고흐와 보낸 시간이 후대에도 명작으로 이어지는 여러개의 작품 속에 자신이 살아숨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그림이란 항상 모르고 볼 때와 알고 볼 때가 너무나도 다르게 다가온다. 이 작품을 비롯해 스티커북의 그림 배경을 하나하나 찾아보았고, 내가 이해하던 고흐를 또 다른관점에서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운 며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