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누군자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달라는 글에 어떤 사람이 천명관의 고래를 추천한다는 댓글을 남겼고, 밑에 공감하는 새로운 댓글들이 많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으로 하며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지 신기했다라는 누군가의 댓글에서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책은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편인데 왠지 소장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 소설은 특별하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자신과는 소설관이 다른 심사위원의 동의까지 얻어냈다는 사실이 작가로서는 힘있는 출발' '소설이 갈 수 있는 최대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등 유명한 작가들의 추천글부터 심상치 않다. 이 소설의 1부, 2부에서는 산골 소녀에서 소도시의 기업가로 성공하는 금복의 일대기와 주변 인물들의 천태만상이 그려진다. 3부는 감옥을 나온 뒤 폐허가 된 벽돌공장에 돌아온 금복의 딸이자 정신박약아인 춘희의 삶을 담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가 한 편의 복수극'이라는 작가의 말대로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을 품고 죽은 박색 노파가 등장하여 주인공을 파국으로 이끈다는 설정이다. 조각 조각, 수십 개의 에피소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모두 모아놓은 양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듣던 옛날 이야기, 동화책에서 본 설화와 신화, TV 연속극 같은 스토리, 인터넷에 떠도는 엽기 유머 등이 섞여든다. 맨몸으로 시작해 큰 사업가가 된 한 사람의 이야기인가 싶으면 벽독을 굽는 한 장인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시 여러 시대를 살다 간 인물들의 지난 세기의 이야기인가 하면 바로 오늘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작가의 인상적인 데뷔작이라는 평이다. '인간의 길들여진 상상을 파괴하는 이야기의 괴물을 만드는, 소설계의 프랑케슈타인' 작가를 표현하는 소개글이었다. 그는 골프숍의 점원, 보험회사 영업사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서른살이 넘어 영화판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영화 '미스터 맘마'의 극장 입회인으로 시작해 영화사 직원을 거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 '총잡이', '북경반점' 등의 산리오는 여화화 되기도 했으며, 영화화 되지 못한 시나리오도 다수 있다고 한다. 연출의 꿈이 있어 시나리오를 들고 오랫동안 충무로의 낭인으로 떠돌았으나 사십이 될 때까지 영화 한 편 만들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진 마흔 즈음,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 동생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2003년 문학동네신인상 소설 부문에 '프랭크와 나'가 당선되었으며, 2004년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에 이 책인 '고래'가 당선되었다. 문학평론가 신수정은 '감히 이 소설을 두고 문학동네소설상 십 년이 낳은 한 장관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고, 소설가 은희경은 '인물 성격, 언어 조탁, 효과적인 복선, 기승전결 구성 등의 기존 틀로 해석할 수 없다'라고 했다. 살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자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의 유니폼처럼 그녀를 안에 가둬놓고 평생 이끌고 다니며 멀고 먼 길을 돌아 마침내 다시 이곳 벽돌공장까지 데리고 온 그 살들을 춘희는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햇볕에 그을리고 군데군데 상처를 입었지만 그녀의 피부는 아직도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 그녀에네 벽독 굽는 방법을 가르쳐준 아버지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가운데 서서히 눈이 멀어갔으며 깊은 고독 속에서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춘희는 문득 가슴이 먹먹해져 몸을 닦는 손을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목욕으르 끝내고 그녀는 옆에 벗어둔 수의를 짓이기듯 꼼꼼하게 빨아 풀 위에 널었다. 멀리 꼐곡 쪽에서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는 눈을 감은채 거대한 알몸을 핥고 지나가는 바람을 음미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산뜻한 기분이었다. 이제 그녀의 예민한 감각은 목욕을 통해 새롭게 되살아나 바람 속에 섞여 있는 계곡의 음습한 기운과, 그 계곽 아래 바위틍ㅁ에 숨어 잠들어 있는 너구리의 누린내와, 벌판을 지나오는 동안 묻혀온 온갖 풀들의 향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비로소 자신의 의당 돌아올 곳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그녀는 오랜 긴장에서 서서히 풀려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