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의 일상에서 여행이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에 대한 현란하면서도 정밀한 사유를 보여주는 ”여행이 불가능한 시대의 여행법“으로 시작하는 ”여행의 이유“는 현대인에게 있어 여행과 인생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제시한다. 이 책은 여행기 하면 통상 떠 올리는 여행지에서 겪는 이런저런 경험을 풀어내는 여행담이 아니다. 저자는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것을 단 한번이라도 경험한다면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하기에 저자는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여행에서 부딪히는 타인과의 관계맺기, 환대와 배척, 여행과 일상의 관계에 대하여 깊은 성찰을 펼쳐 나간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이다”라는 말처럼 여행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것을 사유하는 행위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여행이라는 것은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하지만 생각지도 않던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 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그러한 것이다. 즉 여행은 나와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여행의 이러한 속성은 여행은 의무와 상처의 공간인 집에서 떠나는 해우이이기 때문이다. 집은 의무의 공간이며,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집은 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 하다. 여행은 자신을 물리적으로 구속하고 있는 집을 떠남으로서 나를 무의식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나의 새로운 측면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여행이 집이라는 공간을 떠나는 것과 동시에 여행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도 벗어나는 통로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낯선 언어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 즉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이방인으로서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여행은 스토아학파의 철학에 부합한다. 스토아학파는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고 말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미래에 대한 근심,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저자가 실패한 여행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 데에는 깊은 의도가 있다. 저자는 2005년 12월 소설 ‘빛의 제국’을 집필할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고자 중국 상하이 푸동공항에 내리고 나서는 공항 밖으로 나가 보지도 못하고 ‘난생 처음 추방자가 되어 대합실에 앉아 있는‘ 신세가 된다. 중국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할 것이라 막연히 짐작하고 비자도 없이 비행기를 탔다가 낭패를 겪은 일화가 카프카의 부조리 소설처럼 펼쳐진다. 계획대로 진행되고 목표했던 것을 모두 이루는 것을 여행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여행이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와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러한 여행이라면 자신과 세계에 대해 새로운 것을 느끼고 변화할 수 있을까? 여행을 인생에 그리고 거꾸로 인생을 여행에 견주는 것이야 진부한 비유라 할 수 있지만, 그만큼 확고한 진실을 담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마지막 챕터의 제목이 “여행으로 돌아가다”인 것은 여행과 일상의 변증법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현실은 어지럽고 복잡하고 무질서하다. 현실은 줄거리가 없고 어떤 일들이 불쑥불쑥 일어난다. 때로 우리의 통제력을 벗어나며, 대단한 일처럼 생각하고 긴장했짐나 별일 아닌 것으로 판명되기도 한다. 우주는 우리의 운명에 무심하며 우리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여행을 통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떠나 세상을 새롭게 느끼고, 새로운 경험들을 통합하여 우리의 정신을 고양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경험과 정신을 통해 다시 불안정하고 불규칙한 일상으로 복귀한다. 즉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