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부터 힐빌리의 노래를 굉장히 읽고 싶어했는데 이 책이 미국 정치에 미친 영향 떄문만은 아니다. 경제 사다리의 밑바닥에 잇는 미국 국민이 어떻게 해야 위로 올라갈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기 떄문이다.열여덟살, 태어나서 처음으로 탄 비행기는 나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소도시 파슨스로 데려갔따. 미국하면 막연하게 대도시를 떠올렸던 고등학생의 눈앞에 펼쳐진 그 곳은 그야말로 산골 촌구석이었따. 파슨스는 이책의 저자인 밴스가 묘사한 잭슨의 모습과 판박이다. 나는 그곳의 봄과 여름을 특히 좋아했다. 집 뒤편으로 흐르는 골짜기의 물소리를 따라 숲속을 걷다보면 새소리, 바람소리, 풀잎소리에 정신이 팔려 길어진 해가 지도록 시간 가는 줄 몰랐따. 공항에 날 데리러 나왔떤 가족의 집에서 두어달간 지냈따. 책에서는 미국사람들을 개인주의적성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는데 내가 겪은 미국은 전혀 그렇지 않았따. 쓰는 말과 생김새는 달랐지만, 마치 우리나라 시골처럼 느껴질만큼 만나는 사람마다 다정하고 따뜻했따.
날 맞이하는 부부는 내 또래의 두 딸과 함꼐 너른 언덕위에 증축한 이층 집에서 살고 있었따 아저씨는 탄광회사에 다녔고 아주머니는 동네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일했따. 그 집에 사는 동안 급식비가 면제됏던 일을 미뤄보건대 아마 저소득층에 속했던 것 같다.
이후 머물렀떤 두번쨰의 집도 내 또래의 딸이 두 명있는 가정이 었고 아저씨 또한 교대근무를 하는 생산직 노동자였으나, 이전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끼니마다 집에서 요리를 했고 간식도 거의 만들어 먹었따.
주말이 되면 쇼핑몰이 아니라 교회에 갔고 예배를 마치면 옆동네에 사는 할머니댁에 들러 다른 친척들과 화목한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는 늘 포치에 앉아 담배를 피웠고, 우리가 차에서 내리면 한사람한사람 을 있는 힘껏 안아주며 쪽소리가 나도록 볼에 뽀뽀를 해줬다. 총을 들고 다닐만틈 무시무시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밴스의 할모만큼이나 입이 걸고 유뫠한 대장부였따.
한국인의 눈에는 밴스의 가정환경이 아주 유별나 보일지 모르지만, 미국 애팔래치아 지역에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니다. 밴스가 제기한 문제들-10대 임신, 약물중독, 이혼가정, 복지여왕 등 -은 실제로 그 동네에 만연한 것이었따. 특히 복지여왕을 향한 근로 빈곤층의 분노가 대단했따. 밤낮없이 일해도 먹고싶은 음식, 사고싶은 물건을 마음껏 사지 못하는데 복지여왕들은 자기가 낸 세금덕분에 손하나 까딱 안하고 편하게 사는 것에 대한 분통을 터뜨렷다.
이 책에 열광하는 건 비단 백인 노동계층 만이 아니다. 유명 인사들 또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꾸준히 이 책을 추천하고 있따. 무엇 떄문일까? 힐빌리의 삶에 공감해서는 아닐 것이다. 밴스의 경험은 애팔래치아 지역에서만 흔한일이기 때문이다.
미국 내 다른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웨스트버지니아란 아주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고 비만한 사람들이 많고 우스운 억양의 사투리를 쓰는 촌스런 동네였다. 어떤 배경떄문에 촌사람들이 이토록 비참하게 살고 있는지 이들이 어떤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참담한 현실을 숨기려는 힐빌리의 특성탓에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르고, 촌구석에서 답답하게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세상을 바꾸는 건 권력이나 지식, 돈을 많이 가진 자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힐빌리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지도층 인사들이 이책을 추천하는 건 어쩌면 백인 노동 계층의 문제에 공감하지 못했따는 반성의 일환일 수 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힐빌리들의 공감을 산 밴스의 "힐빌리의 노래"는 미국 내에서 공감을 중요성을 일꺠우며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돌아보면 우리 주변에도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내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다고 귀를 닫을것인가?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비난을 퍼부을 것인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며 이들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이들이 처한 실상을 이해하고 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가 말해주듯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상위 2퍼센트의 지도층이 아니기 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