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학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전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애매하다. 당장 세 달 전까지만 해도 철학이라면 치를 떨었으며, 그저 취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구시대의 학문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 내가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최근 우연한 계기로 대화를 나누게 된 사람이 있다. 대화 중 최근 자신이 읽은 철학 책을 나에게 추천해 주었다. 평소라면 그냥 말로만 나중에 읽어본다고 하고 넘겼겠지만 그 말을 하는 상대방의 눈동자가 너무 초롱초롱했고, 그 말을 하는 상대방의 목소리가 너무 격양되어 있어서 나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겼다. 호기심에 못 이겨 그 책을 포함하여 몇 권의 철학 책을 찾아보게 되었고, 어느새 나는 이 학문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이 책의 저자는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에릭 와이너이다. 에릭 와이너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총 열네 명의 철학자를 선택했다. 매우 신중하게.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혜롭고 이는 각기 다른 맛의 지혜다. 저자는 책의 서론에서 지식과 지혜를 엄격하게 구분하였다. '지식은 안다. 지혜는 이해한다.' 또한 영국의 음악가 마일스 킹턴의 말을 빌려 "지식은 토마토가 과일임을 아는 것이다. 지혜는 과일 샐러드에 토마토를 넣지 않는 것이다." 라며 책을 시작했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지혜를 주고자 했다. 이를 위해 열네 명의 지혜로운 철학자를 세 파트로 분류하여 책을 구성했다. 파트를 나눈 기준은 삶의 단계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삶의 시작과 중간,끝을 각각 새벽, 정오, 황혼으로 빗대어 표현하였다는 점이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왜 각 장의 새벽, 정오, 황혼으로 표현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혹시 철학자들을 시대 별로 구분한 건가? 했지만 찾아보니 그것도 아니었고, 아니면 그냥 저자가 이 내용을 쓴 시간대인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책을 몇 번이고 들춰 본 후에야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작가가 기차를 타고 각 철학가의 고향이나 주 활동 지역을 방문하며 내용이 진행된다. 그들이 거닐던 거리를 걸으며 그들의 정서를 느끼고, 그들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철학가들의 지혜를 엿보고 탐구한다. 그리고 그 지혜를 우리 독자들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이것은 책의 1부) 새벽 중에서도 가장 첫 번째 파트의 소제목이다. 하루의 시작은 침대에서 나오는 것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적절한 시작이다. 마르쿠스 역시 늦잠 자기를 좋아했지만 그는 늘 스스로를 다그쳤다. "지금처럼 침대에서 빈둥거리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불 아래 남아 있는 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다." 마르쿠스의 지혜를 엿보다 보니 나 스스로를 채찍질 하게 되었다. '그만 밍기적거리고 빨리 일어나자. 10분이라도 먼저 일어나서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하자.
나는 이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였는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지혜로워졌는가? 음.. 잘 모르겠다. 아니 사실 알고 있다. 대답은 "아니다" 이다. 철학의 '철' 자도 모르던 나에게 이 책은 너무 낯설었고, 조금 힘들었다. 가까이에 s대 철학과에 재학 중인 지인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이 책을 읽다가 도중에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데 소비한 나의 시간은 헛된 것인가? 이것 역시 대답은 "아니다" 이다. 나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느끼었다'. 그리고 '감탄하였다'. 열네 명의 철학자들과 그들의 지혜에
나는 루소처럼 걷기 위해 발걸음 하나하나에 의미도 부여해 보고, 그저 끊임없이 걷기도 해보았다. 소로처럼 보기 위해 밤하늘과 야경을 보며 미세한 무언가의 움직임에 집중해 보기도 했다. 이를테면 구름의 이동이나 자동차 불빛의 이동에. 그거면 된 거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철학에 대한 분명한 흥미가 생겼으며 지혜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이거면 됐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조금 욕심이 난다. 나중에 철학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익숙해졌을 때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때의 내가 더욱 많은 것을 느끼고, 조금은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있길 기대하면서 이 책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