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최근 몇 년간 벤처계를 핫하게 달군 이슈 중 하나다. 이 중 셀프 헬스 체크는 투자자들의 기대와 환호를 가득 담은 아이템이다.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바로, 돈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머리카락 하나로 조상의 계보를 알려주고, 침 한 방울로 유전질환 및 암발병 가능성 등을 알려주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피 한 방울로 수백가지 건강검사를 할 수 있다니. 이제 연차를 내서 건강검진을 할 필요가 없어진 거다. 점심시간에 가까운 병원에 가서 바늘 한 번만 찌르면 되는 거다. 이 책은 그런 시대를 열 수 있다고 자신한 한 벤처회사의 사기 이야기다. 이 놀라운 사기꾼은 바로 미국의 테라노스. 저렴하고 편리하게 질병을 발견하고 예측해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창립자 엘리자베스 홈즈는 가뜩이나 민간의료보험에 의존해야 하는 미국인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월그린, 세이프웨이 등 미국에만 수천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 뿐만 아니라 미국 군대마저 테라노스와 손 잡았다. 루퍼드 머독,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와 같은 유명인사들과 투자자들은 계속적인 투자를 통해 테라노스를 공룡으로 키워냈다. 그녀는 제2의 스티브 잡스이자 실리콘밸리의 신화였다. 하지만... 신은 없었다. 기술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쯤하면 제2의 황우석이다. 스티브 잡스에서 황우석이라니... 사람 인생 참 모를 일이다.
'꾼'의 냄새를 맡고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은 월스트리트저널의 존 캐리루였다. 캐리루는 테라노스를 퇴사한 직원 60명을 포함, 160여명의 내부고발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대표이사와 운영진들이 저지른 각종 비행에 대한 증거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미 대세가 되어버린 테라노스에서 가만히 있을리 없다. 테라노스는 미국 최고의 로펌을 앞세워 협박하고, 감시와 미행으로 압박하지만 캐리ㅜ는 굴복하지 않고, 특종을 터뜨렸다. 가짜 의료기기 때문에 목숨을 잃을뻔했던 수많은 사람을 구해냈다. 빌 게이츠는 말했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미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끝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끝까지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범죄 스릴러라도 감히 따라할 수 없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가 바로 이 책에 담겨있다.
황우석과 엘리자베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본인의 아이디어에 너무 확신했다는 데 있다. 확신은 자만이 되고, 집착이 된다. 혈액 한 방울로 모든 검사가 되는 기술이 얼마나 획기적인가? 실제로 그녀는 혈액 내 물질을 측정하기 위해 항체를 사용하는 면역 분석 검사만 할 수 있었다. 그건 기존의 혈액검사에서 크게 벗어나는 기술은 아니었다. 비타민D를 측정하거나 전립선암을 감지하는 검사와 같은 일반적인 검사였다. 콜레스테롤이나 혈당을 측정하는 다른 일상적인 혈액 검사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은 노력했다. 그들의 이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수많은 고민과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개발 과정에서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을 통해 혈액을 자의로 제공받아 제품을 만들어갔지만 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 과정에서 회의를 느낀 직원들은 주저하고 퇴사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멈추지 않았다. 환자들의 위험보다 자신의 이상이 더 중요했다. 혈액검사 결과가 거짓 양성이라면 환자는 불필요한 의학적 절차와 심리적 압박을 받아야한다. 여기까진 그렇다고 치자. 그저 조금 더 불편하고 아픈 것 뿐이다. 문제는 거짓 음성일 때다. 심각한 상태의 환자가 제대로된 진단을 받지 못한다면? 죽음의 문턱에 이를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엘리자베스의 사기극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시작은 좋았다. 비전도 훌륭했다. 거짓말만 더해지지 않았다면... 너무나 뻔한 결론이지만, 단순히 한 망상가의 사기극으로 치부할 수 없는 건 망상이 이상이 되고, 이상이 현실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망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 아닌가. 그 망상을 현실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기본과 원칙보다 목적과 목표를 우선시해야할 수도 있다. 만약 이 사기극도 조급함만 없었더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업그레이드했다면 현실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