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폴리틱스>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 프란스 드 발 지음/ 황상익, 장대익 옮김/ 바다 출판사 / 1982, 1989, 1998 저작/2004년 한국어 번역 판을 읽었다. 프란스 드 발은 동물행동학자로 1948년 네델란드에서 태어나, 위트레호트 대학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책을 알게 된 경위는 유시민의 알릴레오 유튜브에서이다. 유튜브를 보다가 재미있을 것 같아 바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게 되었다. 인간만이 정치적 동물일 것이라는, 주입식 교육에서 비롯된 오만한 생각을 정신차리게 하는 책이었다. 한 발 더 나아가 정치는 인류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고, 침팬지가 정치적 행위를 먼저 했던 종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 <이기적 유전자>만큼은 아니지만. ( <이기적 유전자>에서는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믿고 있는 행위들이 사실은 유전자의 생존 전략이라고 말한다.)
프란스 드 발은 네델란드 아넴 동물원(8,000평방미터의 넓은 옥외와 실내가 갖추어진 사육장)에서 23마리 정도 되는 어른 암컷, 어른 수컷, 그리고 새끼들을 관찰하며 연구한 기록을 책으로 썼다.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계획하고 예측해야 하는 정치적 행동들- 과시, 경쟁, 화해, 협력, 연합, 술수,교환, 고자질, 나눔 등등- 을 한다니 신기했다. 물론 그 행동들이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른 수컷으로 서열 1위였던 이에른은 정치 고수와 같은 느낌의 행동들을 한다. 나이가 들어 점점 힘이 빠져 다른 젊은 수컷들이 도전하자 루이트와 연합하여 니키를 공격하다가 니키가 점점 힘이 세지자 다시 니키와 편을 먹고 루이트를 밀어낸다. 니키는 미성숙하여 돌발 행동도 잘 하고 암컷들을 통제하는 데에도 서툴러서 이에른에게 의지한다. 이에른 입장에서는 루이트보다는 니키에게서 이익을 챙길 일(발정한 암컷과의 교미)이 더 많았을 것이다. 침팬지 사회에서는 서열 1위가 거의 성을 독점하며 다른 침팬지들은 서열 1위의 눈치를 보며 몰래 하거나 서열 1위의 허락을 맡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암컷들이 서열에서 반드시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른이 아넴 동물원에 오기 전에 마마라는 나이 든 암컷 원숭이가 서열1위였으며 이에른에게 1위를 빼앗긴 후에도 수컷들의 서열 싸움에 개입해 영향력을 발휘했다. 다른 암컷들도 수컷들의 싸움에 영향력을 발휘하여 싸움을 중재하거나 어느 편을 들어 서열 1위로 만든다. 암컷들이 체력적으로 수컷보다는 힘이 딸리긴 하지만 반드시 힘에 의해서만 권력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서열 외에 실제적인 영향력이 침팬지들 사이에 존재하는데, 그 영향력은 나이, 성격, 경험등에 의해서이다. 그래서 젊고 어린 침팬지보다는 나이든 침팬지들의 영향력이 더 크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로 옛날에는 나이 든 사람들의 경험이 공동체를 운영하는 데 큰 자산이었기에 나이 든 사람들을 존중했었다. 거의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지금의 디지털 사회에서는 아니지만.)
그런데, 침팬지들이 협력을 할 경우에 성차가 있는 듯하다. 암놈이나 새끼들은 공감에 치우친 개입을 보여주는 데 반해 수컷들은 반드시 공감하여 개입을 하지는 않는다. 특히 어른 수놈들이 서열 경쟁을 벌일 때는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입을 한다. 다시 말해, 암놈들은 싸움이 벌어질 때, 사이 좋은 친구의 편을 드는데 수놈들은 전략적으로 개입을 한다. 암놈 침팬지는 경쟁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암놈들은 새끼를 안전하게 키워야 하기에 평화로운 환경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화해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번식이 중요한 수놈 침팬지들은 서열 1위가 되어야 자기 유전자를 많이 퍼뜨릴 수 있기에 권력 지향적이 되는 듯하다. 암놈이 더 평화적이고 수놈이 더 폭력적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유전자의 생존 전략이 그런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인간을 더 잘 알기 위해서 침팬지를 연구했고 책을 썼다고 말한다. 인간만 연구해서는 인간을 알 수 없고,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유사성을 보임으로써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를 성찰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주위 사람들의 서로에 대한 행동,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나의 행동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른 이들에게 잘 베푸는 사람을 단순히 잘 베푸는 성격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타인에게 자기의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애를 쓰는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고 사실 그대로 그렇다는 말이다. 암놈의 평화 전략이 옳으냐 수놈의 권력 지향 전략이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듯이. 이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래야 세상이 돌아가니 말이다. 수놈들의 서열 경쟁도 과정에서는 다소 폭력적일 수 있으나, 권력을 잡은 이후에는 평화의 시기가 온다. 서열 1위가 된 이후 수놈들은 훨씬 더 많이 약자들(암놈들과 새끼들)을 챙긴다고 한다. 그래야 자기가 위협을 받을 때 상대적 약자들이 자기를 지지해줄테니까.
평화롭게 살면 다 같이 좋을텐데 전쟁은 왜 일어나고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왜 끊임없이 미워하고 싸울까를 화두처럼 달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해답을 얻은 듯하다. 모두들 생존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그것이 유전자의 전략이든 아니든간에. 유전자의 전략이어도 우리 인간에게는 유전자적 본능을 자제할 힘이 있다. 무의식적인 본능에서 깨어나서 의식적으로 유전자에 대항할 수 있는 문화적 힘. 그걸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