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의 모순은 항상 제 머릿 속에 맴돌다 언젠가 읽어보아야지 하면서 뒷전으로 미루어두었던 책이었습니다. 그러다 이 책이 다시 머릿속에 들어오게 된건 지난 달까지 참여하고 있던 독서모임에서 였습니다. 다음에 어떤 책을 선정할지 사람들끼리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 양귀자의 모순은 어떨까요?라는 다른 독서 모임원의 질문이 제 머리를 띵 쳤습니다. 아 맞다. 나 저 책 읽고 싶어했지! 다음 독서모임 때 꼭 읽어보아야지 하면서 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9월 달부터 개인적인 사정으로 독서모임을 참석하지 못함에 따라 금번 3차 독서통신연수를 신청하게 되었고 이 기회에 양귀자의 모순을 신청해서 책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이 소설을 읽게 되면서 가장 크게 많이 느낀 점은 행복이란 무엇인가 입니다. 과거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해당 책은 삶을 구성하는 쾌락과 고통 그 반대되는 면들에 대한 고찰이었습니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인간을 살게 하는 건 삶에 대한 욕망 인데 욕망을 갖는 순간 결핍으로 인한 고통을 느끼는 것 또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였습니다. 이와 같은 다른 책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토대로 양귀자의 모순을 읽게 되니 행복한 삶은 어떤 것인가? 나아가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행해지지 않기 위한 마음상태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맞닥뜨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제 답을 조금이나마 적어보려고 합니다. 과거의 저, 가장 최근으로 따지자면 취업준비를 하는 저에게 있어 삶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은 남부럽지 않은 내 상태 였습니다. 내 상태라 함은 사회적인 지위일 수도 있고, 경제적인 능력일 수도 있고, 신체적인 남성성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부분을 잘 가꿔가고자 나름대로 노력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결국에 내 삶을 이끌어가야 하는 동력은 바로 "내 자신의 성장"이었습니다. 성장이라는 단어가 사회적인, 경제적인, 신체적인 우월함을 추구했던 과거의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단어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제가 "성장"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그 단어는 결과적인 발전만을 담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인, 경제적인, 신체적인 성공을 이루더라도 누가보아도 번듯한 상태이더라도 내 마음 상태가 공허하고 무엇인가에 쫓긴다면 그것은 성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성장은 어떤 결과를 받더라도 그것을 준비하고 이뤄가는 과정과 순간들에서 이미 성장을 이뤄냈기에 결과에 대해서는 수용할 줄 알고 의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인생의 모든 면에 적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나와 비교했을 때 10의 발전을 이루진 못했더라도 1의 발전을 이룬 것에 대해 스스로 대견해하고 성취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성장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내가 실패하고 남이 성공해도 남의 성공을 축하해주고 환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장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인생, 실패한 인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그 인생의 주체가 그렇게 생각할 때 비로소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누군가가 나를 기릴 수도 있고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지만 결국엔 그 대상을 세상에 없습니다. 그 대상이 자기 스스로 인생의 주체인 내 스스로가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스토리가 있다면 성공한 인생,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행복한 인생을 만들고자 노력해가야 할 것입니다. 남의 시선에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스스로를 더욱 돌아보는 것. 나 자신을 내적으로, 외적으로 가꿔서 매순간 순간 성정하는 것,. 그것들이 모였을 때 훗날 시간이 지난 구제준 제 스스로가 인생을 돌이켜 볼 때 매우 뿌듯할 것 같습니다. 그러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나 자신만을 사랑하는 마음 만으로 살기보다 남을 사랑하고 남을 품을 줄 아는 사랑도 발휘할 수 있을 때 인생이 더욱 풍족해진다는 것을 양귀자의 모순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