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지난 20년 동안 지상의 가장 멀고 높고 깊은 마을을 찾아다녔다. 지도에도 없는 마을을 찾아다녔다.
내가 나자신의 하루를 살지 않는다면, 무언가 내 하루를 앗아가고 만다. 수천년의 하루가 터무늬로 이어져온 저 멀고 높은 지구마을들을 걸어다니다 첨단 도시로 돌아올때면 나는 아득한 생의 시차를 앓곤한다. 너무 빠른 속도와 폭포같은 정보 속에서 누구나 다 알고 똑똑해진 시대다. 그럴수록 삶에서 가장 중요한 어떤능력이 고갈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감동할줄아는 힘과 감사하는 힘 그리고 감내하는 힘이다. 살아있는 인간에게 있어 오늘하루는 반복되는 일상임과 동시에 전적으로 새로운 창조의 날이다. 하루 하루가 최초의 날이고 하루하루가 신생의 지평이다.
(여명에 물을 긷다) 여명은 생의 신비이다. 밤이 걸어오고 다시 태양이 밝아오면 오늘 하루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하루의 시작은 먼길을 걸어 물을 길어오는 것, 이 물로 밥을 짓고 몸 을 씻고 가축의 목을 축이리라. 짐을 진 발걸음은 무겁고 느리지만 이 삶의 무게에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기꺼이 그것을 감내할 힘이 생기나니 나는 하루 하루 살아왔다.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며.
(카르툼 새벽시장)
청나일강과 백나일강이 만나는 사막에 저 유명한 카르툼 새벽시장이 열린다. 이렇게 풍성하고 다양하고 정갈하고 원색의 생명력이 출렁이는장이 또 있을까. 직접 기른 양파를 정성껏 쌓아놓은 상인이 여럿이 돌려보는 귀한 신문을 펼쳐 읽는다. 먹고 사는게 우선이지만 내가 사는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아침 눈빛으로 세상을 읽어 나간다
(오랜된 티크나무다리)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목조다리. 온갖 풍랑에도 곧은 뼈대로 버티고 선채 수백년의 세월로 오늘을 받쳐주고 있다. 아침 햇살에 건너간 나무다리는 저녁노을에 다시 건너올수 있지만 오늘 건너간 하루는 다시 돌아올수 없다. 그러니 하루 속에 영원을 살아가야 한다고 동틀녘의 우빼인 다라기 말하는 것만 같다.
(씨앗을 심는사람)
세계에서 화산이 가장 많은 땅 인도네시아, 혁명의 날이 그러 하듯이 화산 폭발은 두려움과 동시에 비옥한 대지를 선물한다. 아침 안개 속에 씨삼자를 심어가는 라당의 농부들, 살아있는 인간은 날마다 무언가를 심고 씨 뿌려간다. 밀의 씨앗인 말씨로도 마음의 씨앗인 마음씨로도 세상깊은 곳에 좋고 나쁜 씨앗을 심어간다.
(티베트 고원의 보리수확)
중국은 티베트를 점령한 후 티베트인들의 전통 작물인 보리대신 밀과 쌀을 심게했다. 기후와 풍토에 맞지 않아 흉작이 이어졌고 수많은 사람이 기근으로 죽어갔다. 다시 보리를 심기 시작한 티베트인들, 보리로 만든 짬빠를 먹어야하는 티베트인이지요. 지금도 빼앗긴 땅, 빼앗긴 날이지만 총칼로도 빼앗지 못할 티베트 여인들의 웃음소리 노랫소리가 보리밭을 흔든다.
(당당한귀향)
인도양 푸른 파도가 철썩이는 베따꾼 어촌, 붉은 석양을 받으며 먼 바다로 떠난 어부들이 밤새 파도와 싸우며 잡은 물고기를 싣고 귀향한다. 배가 없는 가난한 이들은 일을 거든 후 일용할 물고기를 조금씩 나눠 받으며 만선의 기쁨을 함께한다.
어깨에 짊어진 묵직한 물고기를 팔아서 막내아이 교복을 사 입힐 생각에 흐뭇한 어부는 파도속 격한 노동의의 피로가 달콤하기만 하다
(흙지방 마당의 담소)
만년설산에 둘러싸인 파슈툰 마을. 오전 노동을 마치고 흙지붕 마당에 모여 빵과 차를 나눈는 느긋한 시간이다
어른들은 아이와 청년이 있어 말을 삼가며 위엄을 지키고 아이들은 예의를 갖추며 지혜를 배운다. 우리의 계율은 우애와 환대이지요. 삶의 마당에 우정과 사귐의 꽃을 피우고 이방인을 반기며 빵과 차를 나누는 거죠. 차를 마시는 시간이 없는 하루는 아무리 부유해도 메마른하루이지요. 친구가 찾아오지 않는 집안은 아무리 부귀해도 가난한 집안이지요
(다시 길 떠나는 새벽)
먼 길은 걸어온 사람은 알리라. 오늘도 길 찾는 사람은 알리라. 여기가 나의 정처가 아님을 나만의 다른길이 부르고 있음을. 아 나는 두 세상 사이의 유랑자. 걸으면서 길은 찾는 순례자. 하우하루가 좋은 날이다. 다시 새벽에 길은 떠난다.
(자전거를 타고 귀가할때)
예전에는 천국이라 불렸으나 지금은 지옥이라 불리는 땅, 파키스탄. 마중나온 아이를 태우고 노을길을 달린다. 오늘도 폭음이 울렸지요. 오늘도 곡절이 많았지요. 그래도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아이들 먹을걸 구해들고 귀가할 수 있어. 오늘도 감사한 날입니다. 지구위에는 오늘도 살아있음과 일용할 양식을 구해가는 것 만으로도 그냥 고맙고 눈물 나는 그런 하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