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다루어지는 대부분의 소재나 주제가 그러하듯 소설 작법서 역시 다양한 층위의 책들이 나와 있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로버트 맥키의 '스토리' 등이 대표적인 책이다. 스티븐 킹의 책은 세계적인 천재 이야기꾼이 자신의 글쓰기 비법을 알려준다. 물론 이것은 정형화되거나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작가의 글에 대한 태도와 인생담이 주 내용이다. 스티븐 킹이 아닌 자국 내에서 또는 한정적인 장르물 안에서만 소비되는 작가라면 큰 주목은 받지 못할 것이다. 맥키의 책은 시나리오에 대한 것이며, 이야기 구조에 대해 보다 실용적인 기술을 알려준다. 아무래도 영화판에서 훌륭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는 방법에 대해 쓰고 있기 때문에 소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다루지는 않고 있다. 영화 산업이라는 거대한 전제가 있는 점도 소설에 대한 안내서로는 아주 약간의 엇갈린 각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말로 씌인 책들 중에도 기성 작가들이 쓴 소설 작법서들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 체계적이라기 보다는 태도랄지, 자신만의 문학론을 펼쳐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로서 어느정도 입지를 다지다가 더이상 잘 보이지 않는 그런 작가들의 책들도 보인다. 물론 취미로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 이정도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취미가 됐든 전업이 됐든 좀더 좋은 책으로 시작하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데이비드 로지의 이 책은 상당히 맞춤 옷 같은 느낌을 준다. 연관성이 없을 수도 있지만 번역된 책이라는 것도 나름의 신뢰감을 준다.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의 소설이 아니라 작법서라면 그만큼 내용이 훌륭하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것이다.
이 책은 총 50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만큼 소설을 구성하는 요소를 매우 세부적으로 구분해서 다루고 있다. 세부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소설의 세부구조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고, 꽤 예전의 책인데도 아직까지 상당한 판매고를 올린다는 것은 세부구조가 전체를 훌륭하게 떠받치고 있다는 뜻이리라. 소설의 작법서이기도 하지만, 트리스트럼 샌디나 허영의 시장(Vanity Fair) 등 근대적으로 완성된 구조의 소설에 대해서도 다루며, 시간이 지나도 극히 현대적이라 불리는 카프카나 핏츠제럴드 같은 소설들도 다루고 있다. 작법서이면서 소설의 역사에 대한 강의도 함께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1장 '서두'부터 50장 '결말'까지 읽어가다보면 소설의 다양한 형태와 기술에 대해 충실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장 '서두'는 무엇보다 작가들이 두려워하는 소설의 시작점을 다루고 있다. 많은 작가들이 소설의 내용과 플롯을 잘 구성해도, 서두를 쓰기 매우 어려워한다. '7년의 밤'을 쓴 정유정 작가 역시 인터뷰에서 서두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서두는 단지 허구로 지어진 소설이라는 집의 입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입구에서 독자들은 집의 모양, 분위기, 방향 등을 암시받기를 원한다. 집안의 인테리어가 아무리 좋아도 입구에서 보는 집이 마음에 안들면 작가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지워지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소설의 요소 이외에, 그간 작가들이 개발해낸 다양한 기법들도 충실하게 포함해놓고 있다. 17장 '텍스트 속의 독자'를 언급해보자. 소설 속에서 마치 액자처럼 독서체험을 통해 자가는 자신이 원하는 독자와의 거리를 조절할 수 있으며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완곡하게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27장 '복수의 목소리로 말하기'의 경우는 반대로 텍스트 속의 독자가 아니라 텍스트 속의 또다른 화자를 통해 기본 서술자로 도출하기 어려운 효과를 달성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특정 상황을 언급한다던지, 이질적인 문체를 도입하여 일관성을 잃지않고 새로운 분위기를 환기한다던지 하는 효과가 가능하겠다.
전형적인 소설의 구조 뿐만 아니라 실험소설, 코믹소설, 마술적 리얼리즘, 초현실주의, 논픽션 소설, 메타소설 등 독특한 장르도 다루고 있어 이야기의 비밀을 알고 싶은 독자는 언제든지 머리맡에 두고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이 있다.
작가는 물론 독자들도 이 책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작가들이 긴장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