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는 말한다. 풀리지 않는 난제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소란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홀로 고요하고 싶을 때, 예기치 못한 마주짐과 깨달음이 절실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여행을 소망한다고…
우리가 여행을 떠난다고 할 때 여행은 본질적으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사람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가지각색일 것이다. 어떤 이는 일상의 피로함을 달래기 위한 휴식을 위해, 어떤 이는 우연히 tv속에서 마주친 멋진 광경을 직접 체험해보고자, 어떤 이는 자신의 평소 관심있던 주제에 대한 탐구를 위해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는 단지 표면적인 이유일 뿐...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여행의 근본적인 속성과 관련 있다. 그 속성이란 여행을 하는 동안은 과거의 나로부터 잠시 단절시키고,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이다. (여행지에서 조차 우리의 일상을 생각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독립된 시간속에서 삶을 재충전하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다른 문화를 느끼며 그 시간속에서의 ‘현재’를 즐긴다. 우리의 인생은 일백년의 연속된 시간이기도 하지만 때론 일상과 비일상의 단절이 이어지는 것이며, 여행은 곧 그러한 비일상의 단절의 일부인 것이다.
이렇게 잠시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그 어떤 근심과 걱정없이 내 인생의 ‘현재’에 집중하는 이 시간은 역설적으로 여행시간 속 ‘현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여유롭게 마시는 오후의 커피한잔, 우리의 후각을 정화시키는 맑은 숲의 향, 유럽국가의 역사를 배우며 느끼는 지적 희열... 삶의 모든 순간은 모두 소중하나 단지 사회적 본분을 다하기 위한 일상속에서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찾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이렇게 여행을 떠남으로 잠시 일상과 분리된 시간, 공간속에서 삶의 소중함을 찾고 이를 자양분 삼아 길고 긴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여행은 삶의 자양분이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삶의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리게 된다. 즉 여행을 통해 우리는 나와 나의 주변을 더욱 공고히 하여 삶의 성장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성장하는 동물이고 여행은 그러한 성장을 촉진하는 성장기와 같은 시간이 아닐까?
나에게도 그러한 시간이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부모님의 사정에 따라 1년간 미국 시애틀에 거주하는 경험을 하였다. 이 1년의 시간은 나에게 여러 가르침을 주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가르침이자 나의 깨달음은 이 세계의 ‘다양성’에 관한 것이었다. 시애틀은 미국 내에서도 특히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아가는 지역이다. 내가 1년간 다닌 학교와 방과후 활동속에서 나는 세계 각국의 아이들을 만났고 그들과 소통하며 지냈다. 그들의 언어는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한국어 그리고 태어나 처음 듣는 언어까지 수가지 종류였고, 그들의 사고도 그들의 언어 이상으로 복잡하고 다양했음은 물론이다.
또 미국이라는 지역은 한국과 달리 매우 큰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였다. 우리 가족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미국 서부에서 동부까지 자동차로 왕복여행을 떠났는데, 이는 서울-부산 400KM에 한정된 국토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여정이었다. 또 각 주를 지날때마다 바뀌는 기후,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보며 나는 견문을 넓히고 사고의 지평도 넓힐 수 있었다. 당시 배웠던 미국 독립과정, 남북전쟁 등은 현재의 미국사회 나아가 전세계의 패권구도를 이해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이 경험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여행은 한 인간을 성장시키고, 이 세계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고, 사고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설사 휴식의 시간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재충전하여 다시 치열한 현실세계에 재진입할 에너지를 얻는다는 측면에서 그 효과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으리라.
누군가 나에게 여행을 떠날 기회를 준다면, 나는 1초의 지체도 없이 떠나리라. 그것이 나에게 주는 휴식일지, 또 다른 경험을 위한 시간일지 장담할 순 없다. 하지만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나는 그 여행을 말미암아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나의 결심이다. 여행을 떠나자.